11월, 그 쓸쓸함에 대하여
11월,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2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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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청 논 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1월은 참으로 쓸쓸한 계절입니다.

아마 11월만큼 스산한 달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해가 바뀌어 한 살 나이를 더 먹게 되는, 그리하여 중년 이후의 회한이 더욱 몸서리쳐지는 12월을 허전함의 대명사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12월은 으례 정월이 뒤따르게 되고, 그 정월에 우리는 희망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11월은 더욱 애잔합니다.

이제 달랑 남은 달력 하나로 한 해의 마무리에 종종걸음을 해야 하는 쫓김에서부터, 그리고 또 세월의 덧없음이 사무치는 허전함으로 남는 11월은 그래서 더욱 비장한 아름다움입니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들의 얘기에 휩싸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BBK의 진실이 어떻고 간에 그 천문학적 돈의 무게는 우리 서민을 충분히 기죽게 하고, 삼성의 비자금 규모와 그 흐름은 그 돈의 양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우리의 힘을 빼놓고 맙니다.

이제 오늘로 다가고 마는 지구에서의 2007년 11월에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말잔치에 진저리를 쳐야 했습니까.

신경을 꺼버리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마치 스멀거리는 이질감처럼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소식들에게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11월은 그래서 때로는 잔인하다는 생각을 갖게도 합니다.

세계적인 거장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은 말이 거의 없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가 1935년 영화 '39계단'을 촬영하는 첫 날, 두 주연배우 매들린 캐럴(Madeleine Carroll)과 로버트 도내트(Robert Donat)의 손 하나씩을 수갑에 채운 뒤 한나절 동안 사라졌다가 촬영에 나선 일화는 유명합니다.

감독이 원하는 연기방식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연기자를 분노하게 함으로써 작품의 캐릭터를 최적화시킨 히치콕의 말없음은 어느 때보다도 말이 풍성한 지금 이 땅의 11월에 더욱 솔깃합니다.

말로써 이끌어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본능을 통해 스스로 목표에 접근하게 하는 히치콕의 방식은 어쩌면 자신과는 무관한 딴 세상의 이야기 같은 허무함이 난무하는 요즘의 말 글 세상에서 오히려 신선합니다.

이제 세월은 허전함과 스산함의 극단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다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직 훨씬 못 다다른 것도 아닌 것 같은 11월은 가고 이제 여기저기에서 부름을 받으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기에 분주한 12월은 어김없이 찾아 올 테지요.

그리하여 올 한해 동안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 지가 여전히 어설픈 아련한 현기증으로 2007년의 끝자락을 우리 모두는 서성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쓸쓸함의 11월에도 우리에겐 김연아의 눈부신 몸짓의 기쁨이 있었으며, 4년을 기다린 여수엑스포 개최의 희열도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높은 배추 값에도 어김없이 김장을 담그며 자식들 집으로 전화를 해대는 늙으신 어머니의 여전한 고마움도 고스란하고, 귓불이 시린 새벽길을 용감하게 나서는 가장들의 든든함도 힘차게 살아 숨 쉬는 이 계절은 그래서 희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다만, 갈수록 치열해질 말잔치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스스로 말을 아끼면서 스스로에게 충실한 겨울이 되길 빌고 또 빌어 봅니다.

혹시 압니까.

12명이 옛날 옛적 12사도와 닮아 우리에게 아주 밝은 빛과 희망과 용기를 잔뜩 가져다주며, 진실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줄지.

설마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김연아도 있고, 2012년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의 풍성한 넘실거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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