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의 딜레마
이명박 후보의 딜레마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7.11.2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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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부장(천안)>

대선을 코 앞에 둔 마당인데도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부동층이 늘고 있다.

과거 대선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한국갤럽의 지난 17일 여론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지후보가 없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부동층'이 지난 8월 이후 가장 높은 19.2%나 나왔다. 이 기관이 올해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긴 뒤 곧바로 낮아졌던 부동층 비율이 돌연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중앙지의 여론조사 결과도 부동층이 지난 3일 7.0%, 10일 11.7%에서 17일 조사에선 22.9%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와 언론들은 그 원인으로 '이회창 출마'와 'BBK 연루가능성 및 자녀위장취업 등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 '여권의 단일화' 등 크게 세가지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앞의 두 가지 이유가 설득력이 크다. 아니, 따지고 보면 원인은 하나, 이명박 후보의 지지층이 움직인 것이다.

언론이 '판세 유동성의 증가'라는 수사(修辭)를 쓰며 부동층 증가 원인을 보도했지만 실제 이유는 '찍어주고 싶은 후보가 없어졌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 싶다.

물론 그 당사자는 이명박 후보다.

시장 바닥을 돌면, 또 택시만 타더라도 쉽게 얘길 들을 수 있다.

"자식들을 위장 취업시켜 세금을 안내려 했다죠", "10년 넘게 안냈던 세금을 이번에 한꺼번에 냈다죠", "찍어주려 했는데 자꾸 나쁜 얘기들만 나오네." 등등.

이런 여론이 확산되면서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 후보를 불안해하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바른() 말 잘하기로 정평이 난 당의 '입', 전여옥 의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명박 후보에 대해) 솔직히 BBK부터 후보 자녀들 취업문제까지, 제 자신이 좀 짜증났다. 어제 만난 한나라당 지지자가 '우리는 지금 불안한 애정을 이명박 후보에게 보내고 있다'고 했는데, 국민들이 마음 졸이는 이 상황이 참 속상하고 죄송하다."

전 의원의 말을 입증하듯 한겨레신문이 어제 보도한 한나라당 자체 여론조사결과는 이 후보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지지도는 그런대로 1강2중의 대결구도가 종전 흐름을 유지했지만, 특별한 질문, 그의 성품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설문에서 '비호감'이라고 응답한 층이 무려 51.1%로 나타났다. '호감'이라는 응답(33.3%)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것.'(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한나라당의 지지층에서 30%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 후보 개인을 지지한다는 층에서도 19%나 '있다'고 응답했다. 이 후보 지지층이 빠져나가는 이유가 자명해진 셈이다.

그런데 이탈 된 부동층이 다른 후보쪽으로도 가지 않고 있다. 갈 곳 없는 부동층이 늘고 있는 이유다. 대선출마 선언 후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고, 정동영 후보를 비롯해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도 역시 거의 같은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보수층에서 이탈된 표심이 '제2의 이인제'로 낙인찍히며 정치의 정도를 지키지 않은 이회창 후보의 원죄를 좀처럼 용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제 만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가 최근 부동층으로 돌아섰다는 한 지기가 이런 말을 했다.

"가을철 수확기, 과수원에서 좋은 사과들을 따놓고 선별작업을 할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알아 그런데 이번 대선은 아니야. 우박맞아 다 망가진 사과들을 펼쳐놓고, 그중에 비료값이라도 조금 건질 수 있는 덜 썩은 사과 골라내는 기분으로 투표장에 가야 할 것 같아."

대선고지를 눈앞에 두고 딜레마에 빠진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 유권자들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몰라도 너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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