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선비정신은 어디에 있나
지금, 우리의 선비정신은 어디에 있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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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 상 득<편집부국장>

 우리의 역사 속에는 삼국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상들의 혼이 담긴 선비정신 문화가 있다.

이 선비문화의 중심에는 선조들의 나라 사랑하는 애국 충절과 부모를 봉양하는 효사상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또 서로가 쉽게 저버리지 않는 신의를 중하게 여겼다. 그러한 선비들은 삶에 있어서 가장 갖춰야 할 덕목으로 검소하고 청렴한 것은 물론이고, 특히 재물을 탐하는 물욕은 선비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며, 반드시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신라시대를 보면 문(文)보다는 무(武)에 중심을 둔 선비문화가 더 발달되어 있었다. 그래서 신라의 선비문화는 화랑정신을 구심점으로 하는 무의 문화가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신라는 그것으로 인해 삼국을 통일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바로 선비문화인 화랑정신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양반사회가 형성돼 학문을 중시하는 사회로 전환되었다. 그 역할에는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두 종류 선비문화가 중심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양반 문화가 발전해 문반에서는 세종대왕으로 하여금 한글을 창제하는 위업을 이루는 계기가 된 것이라 여겨진다.

조선 500년 역사의 정치사를 보면 선비정신은 우리 민족혼의 뿌리라 할 정도로 그 정신 자체가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조정 대신들의 선비정신 기개는 절대 권력자인 임금의 정치독주를 좌시하지 않았으며,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께 상소를 올려 잘못 된 것을 바로 잡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관직을 삭탈당하거나, 귀양살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올곧은 선비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선비정신은 어느 시대에서나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질서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할 경우 앞장서서 그 시대 이념을 실천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 사회에서는 유교이념에 기초한 '선비'가 등장해 인륜에 근거하는 '강상(綱常)'의 규범을 제시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 충절과 부모를 섬기는 효는 나라의 국시(國是)라 할 정도였다. 선비는 '의리'의 실현도 중하지만, 꺾일 줄 모르는 기개와 절개가 누구보다 강해야 하고, 청렴과 결백 또한 생명과 같이 여겨야 하는 것이 선비가 갖춰야할 덕목이었다.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에는 목민관의 자세를 다루고 있는데, 청렴·절검을 생활신조로 해서 백성본위의 봉사정신 등을 담아 생활의 지표로 삼도록 했다.

이런 모든 선비정신은 우리 선조들의 강직함과 올곧음을 중히 여겨 쉽게 배신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치욕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근세의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이 시대 선비정신의 중추를 이루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민주화와 민권 향상을 위해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선각자 정신으로 선비의 역할을 했다 하겠다.

그런데 지금은 그 옛날 선조들이 가졌던 선비정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욱 그렇다. 오직 자신의 이재와 명예만을 좇는 동물적 감각을 지닌 사람들 뿐이다.

국민의 생활과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기업인이나, 정치인은 개인의 명예를 위해 온갖 미사여구로 위장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혼탁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

지금 제 17대 대통령 선거 출마 후보자들이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상대의 결점을 들추어 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과연 이들에게 선비정신은 있는가. 그것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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