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공간에서 미래를 구상하다
추억의 공간에서 미래를 구상하다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4.03.2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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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제 모교인 신송초등학교는 한국전쟁 기간에 생겼고 남일초등학교의 신송분교를 거쳐 이제 신입생까지 80년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전 칼럼에서도 학교의 풍경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서쪽 언덕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함께 유물과도 같은 도서관, 아버지가 배우시고 당시에 쓰지 않던 옛 목조교실이 있었고, 남쪽 동산에는 커다란 살구나무와 연못, 이순신 동상이, 울타리쪽 운동장에는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거목 수 그루가, 동쪽 강당 근처로는 마을마다 형과 누나들이 조를 지어 같이 야영도 하고 녹음 짙은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던 씨름장이 있었습니다.

이미 작은 학교가 된지는 오래지만 저출산과 함께 아이들 감소로 많은 학교들이 비게 되면서 소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년기에 기억하던 풍경들이 몇 년 후면 그 원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고 학교의 풍경을 추억의 한 켠으로 두게 될 것 같습니다. 계속 고향에 살고 있는터라 학교의 운영위원장을 맡고도 있는데 신송초 역시 학교소멸에 대비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전교생의 수가 30명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직선거리 2㎞에 공공택지가 개발되고 있어 가장 우선순위로 학교의 이전문제가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도 대규모 민간택지개발로 학교 이전이냐, 유지 후 폐교 수순이냐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학교 주변의 여건과 잠재성으로 또다시 학교 이전을 통한 재배치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성무비행장 덕에 개발이 제한되어 그렇지, 위치에서 도시와의 접근성이 좋아 언제든 논의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학부모, 동문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당연한 것은 교명과 함께 학교의 역사를 잇는 계속성의 보장입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상징적인 거점공간인 학교 부지가 의미 있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위치로 학교가 이전되는 경우 학교 역사의 계승은 학교 이전 재배치를 동의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지만 학교 부지의 활용방안은 이전 단계에서 결정되기 어렵고 교육청에서 장차 동문과 지역주민, 지방자치단체와의 의견수렴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후자의 방안을 학교 이전과정에서 조건으로 내세우고 이것을 보장받기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관련 법령이나 조례 역시 미흡합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교육청의 의견수렴절차에 참여하는 기회를 보장받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학교 이전문제가 거론되면 폐교를 감수하더라도 지금의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 이전을 결사 반대하였습니다. 학교의 존재와 역사가 지역사회의 상징이자 구심점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농촌지역은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의 인구 소멸에 따라 아이 없는 학교를 마냥 방치할 수 없다는 시대적 흐름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학교 이전의 동의와 함께 학교 부지의 활용에 대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교가 위치한 곳은 공군사관학교와 성무비행장으로 인해 청주 남부 발전의 한계선입니다. 학교 부지의 활용을 위해 도시 외곽으로 갈수록 부족한 휴양공간을 조성하고자 체화서원과 같은 역사유적과 아름다운 마을 둘레길을 잇는 거점공간을 겸하면서 자치단체장의 책임 하에 비행장 이전 검토를 시작으로 단순히 택지와 상가 등의 난개발이 아닌 항공우주 관련 특화단지 마련, 항공우주박물관, 청소년 항공우주캠프 등의 기능들로 공간을 재배치한다면 학교 이전에서 시작된 모범적인 국유재산 활용이 지역사회에 미래지향적으로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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