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에 꼬리를 끌다
진흙 속에 꼬리를 끌다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4.03.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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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국장(진천주재)
공진희 부국장(진천주재)

 

양돈산업에서 돼지는 114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태어난다. 젖을 먹는 기간이 지나면 어미와 떨어져 110㎏에 도달하는 180일 정도 사육된 후 도축되지만 자연상태에서 돼지의 수명은 10~15년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를 대하는 주인의 태도는 지극정성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한 배설물 처리시설, 때맞춰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는 급여시설, 언제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수도시설 등 시설투자는 담대하다. 먹이는 잘 먹는지, 잠은 충분히 자는지, 영양상태는 양호한지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돼지수발에 여념이 없다.

주인의 애정어린 사육에 호사스런 생활을 누리던 배부른 돼지는 인간에 의해 자신의 수명이 결정되어 결국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된다.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 그 주인이라면 인간의 욕망을 사육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요즘 점심으로는 몇 천원짜리 김밥을 먹더라도 핸드백만큼은 수백만원 하는 명품을 사려는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상류층에 속하게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비싼 차에서 내리면 세인들에게 존중받는 느낌, 이른바 `하차감'을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해 젊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차를 구매한다.

1899년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유한계급론'에서 언급한 지각없이 행해지는 상류계층의 `과시적 소비'는 필요에 의해서 소비 여부를 결정하기 보다는 다분히 자신의 부와 명성을 자랑하기 위한 소비 행위를 말한다. 자신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고려함으로써 비싸야 명품이라는 편견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지나치게 물욕에 빠져 주인에게 칙사대접을 받으며 사육당한 뒤 결국 도살장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돼지의 처지와 비교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이제 욕망의 시선을 정치로 옮겨보자.

먼저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 실린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

장자가 낚시질을 하고 있을 때 초(楚)의 위왕(威王)이 대부 두 사람을 보내어 재상을 삼으려는 뜻을 전했다. 장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돌아보지도 않고 웃으며 사신에게 말했다.

`내가 듣건대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3000년이나 됐다 합니다. 임금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고 상자에 넣어 묘당(廟堂)에 보관한다 합니다. 당신이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

대부가 말했다. `물론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어 했겠지요.'

그러자 장자는 `돌아 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라고 답했다.

3월 17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한국·중국·일본은 국회의원이, 미국과 독일에서는 소방관이 1위로 꼽혔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국민 삶의 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 신뢰도는 24.1%로 최하위였으며 100여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함께 조사한 `세계 가치조사'에서 2022년 한국 국회 신뢰도는 20.7%를 기록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공천 갈등을 겪으며 최하위 신뢰도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의지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지만 국민과의 약속은 비단에 싸여 묘당에 보관된 거북이 뼈 신세가 된 것은 아닌지?

살아서 진흙 속에 자유를 누리던 유권자들은 `빛나는 시민의식'을 다시 보여줄 의지도,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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