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한 불온한 상상
정치에 관한 불온한 상상
  •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 승인 2024.03.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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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논객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상상은 자유다. 아니 상상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날지 못하는 인간은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만들어 그 꿈을 이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며 여러 유형의 비행체를 설계했다. 그중의 하나가 새나 곤충처럼 날갯짓하며 하늘을 나는 `오니솝터(Ornithopter)'다. SF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오니솝터는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다빈치의 상상은 아직도 실현 중인 셈이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그래서 무죄다. 혼자서 조용히 상상하다가 몇몇이 모여서 함께 상상한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 기득권자에게 이들의 상상은 그 자체가 불온(不穩)이다.

이들의 생각은 불온사상이고, 이들의 생각을 담은 책은 불온서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득권들이 더 움켜쥐고, 심지어는 빈궁한 이들의 호주머니까지 털려는 데서 화학적 변화가 시작된다.

아흔아홉 석을 가진 이가 일백 석을 마저 채우게 한 석을 달라고 하니 소수이던 불온이 보편적 가치관이 되고, 마침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소수이던 불온이 공감을 얻으면 혁명(革命)이 일어나는 원리다. 그러니 변혁은 변혁 당하는 자들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의 정치도 자꾸만 불온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정당은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승자독식, 거대 양당 담합정치가 고착됐다. 거대 양당은 다양한 목소리, 소수를 대변하기 위해 떼어둔 비례대표 몇 석을 더 챙기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고, 연동형에 캡까지 씌웠다.

양당이 주도하는 국회는 철저한 기득권 집단이다. 여당은 `운동권 퇴출', 야당은 `검찰 독재 종식'을 외치는데, 그만큼 국회 안에 율사(律士, 법조인) 출신과 투사(鬪士) 출신이 많다. `이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전직 고위 관료들과 특정 정파의 나팔수처럼 활동하던 전직 언론인들도 지분을 가진지 오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임금님을 원한 개구리'처럼 통치자를 원해 황새를 모셔오려는 어리석은 개구리들이 아니라면, 우리의 처지를 대변할 대리인을 국회로 보내는 게 맞다. 세상은 어떻게든 협력하고, 동조와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데, 정치는 패를 갈라 오직 피아(彼我)만 존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래서 불온한 상상에 빠져본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공천 총량제를 적용하면 어떨까? 양원제나 권역별 비례는 지역을 안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마땅치 않다면 법정의 배심원처럼 의원의 일정 비율을 추첨으로 뽑았으면 좋겠다. 나이와 성별, 직업(학생, 무직 포함), 재산 등을 고려해 촘촘하게 표본을 추출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추첨으로 뽑힌 대리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정당도 협치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토론과 표결을 통해 결정한 건 제왕적 대통령이 `거부권 없이' 인정하는 풍토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걸 담아내려면 국회의원 수가 크게 늘어야 한다. 회의 참석 수당 정도만 받고, 당연히 생계를 위한 겸업도 허용해야 한다. 실제로도 인구 대비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OECD 평균에 비춰볼 때 절반 수준이다. 정치혐오를 조장하면서 `국회의원 수 줄이자'라는 선동도 기득권의 특권 유지 전략일 뿐이다.

불온한 상상이 이루어져 만약에 `추첨제'가 도입된다면 `나도 (추첨으로) 뽑아달라'며 추첨제 국회의원에 도전할 생각이 있다. 잘할 자신이 있다. 오늘의 불온한 상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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