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준 밥상 걷어차는 재주
차려준 밥상 걷어차는 재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3.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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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돌이켜보면 그에겐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비명의 싹을 자를 기세로 학살 수준의 공천을 밀어붙여 `당을 사지로 몰고있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음에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귀를 굳게 닫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비판 여론이 쏟아지며 판세가 여당쪽으로 기울어 당내에 총선 필패론까지 등장했지만 그는 “국민의 선택을 두고보라”고 받아쳤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차려준 밥상을 챙기지 못했다. 민주당의 오만한 공천에 등을 돌리는 민심을 떠안지 못했다. 이재명에게 `결코 발등을 찍지않을 믿는 도끼'는 다름아닌 여당의 무능이었던 것이다. 야당 우세의 수도권 판세를 반전시킬 천금같은 호기를 잡고도 기회를 극대화하기는커녕 무위로 돌리는 여당의 비상한 재주를 이 대표는 일찌감치 예견했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막장 평가를 받던 민주당 공천과 차별화한 전략으로 초반 주도권을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현역 의원과 친윤 일색으로 흐른 공천은 민주당보다 잡음만 덜했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는 혹평을 면치못했다. 민주당은 친명 후보가 55%에 달한다. 하지만 국민의힘 역시 친윤 내지는 용산 참모 출신 후보들이 30%에 육박하다보니 야당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핀잔부터 들어야 했다.

후보의 불미스런 과거가 드러나 공천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거듭되며 제기된 후보검증 부실 비판도 국민의힘은 비껴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목함지뢰 피해 군인을 조롱한 정봉주 후보와 성폭력 가해자 변호 전력이 드러난 조수진 후보의 공천을 철회했고, 어제는 투기 의혹을 들어 이영선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다. 뒤질세라 국민의힘에선 `난교' 발언과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으로 장예찬·도태우 후보가 논란을 빚었다. 당 지도부는 사과의 진정성 운운하며 뜸을 들이다 결국 공천을 취소했다. 민주당은 피장파장을 만들어준 국민의힘 덕분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위성정당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국민의힘은 차별화에 실패했다. 후보 명부에서 다양성·비례성·대표성 확충이라는 비례대표제 취지와 가치가 보이지 않기는 두 당이 똑같았다. 국민의힘에선 설상가상 낯뜨거운 내분까지 벌어졌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대통령 측근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이 비례명부 수정을 놓고 충돌했다. 대통령실에서 당에 추천한 인물들이 전면 배제된 게 갈등의 이유로 알려지며 유권자들에겐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지분 싸움으로 인식됐다.

당을 망친다는 비판을 뭉개가며 담대(?)하게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을 강행한 이재명 대표의 굳건한 신념은 마침내 용산에 이르러 결실을 보았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해병 사망수사 외압 의혹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은 당의 총선 가도에 결정타를 안겼다. 민심이 들끓었지만 수습 과정은 더디고 서툴렀다. 여론과 당의 압박에 밀려 마지못해 결정한 황 수석 사퇴와 이 대사 귀국은 공감을 얻지못할 `사후 약방문'이 돼버렸다. 이 대사에게 그럴듯한 귀국 명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주요 공관장 회의를 급조했다는 보도까지 터지며 민심은 차갑게 돌아섰다.

거대 양당의 동반 퇴행을 딛고 조국혁신당이 훨훨 날고있다. 비례투표 정당 지지율이 30%를 넘는다는 조사결과까지 등장했다.

보수 본방인 TK와 부산·경남에서도 20%를 찍을 정도다. 그냥 정권 종식이 아니라 `정권 조기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건 정당의 급부상은 누구보다 집권당이 곱씹어야 할 현상이다.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가 비례 투표만 하겠는가?

한동훈 위원장은 “이번에 지면 윤석열 정부는 뜻 한 번 펼치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은 것은 대통령의 비상 처방이다. 야당이 차려준 밥상을 걷어 찬 국민의힘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상대의 악수와 실책에서 승부가 갈리는 옹색한 정치가 안타까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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