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우화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우화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4.03.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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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가치관에 혼란이 올 때면 우화집을 펼쳐 든다. 동식물과 사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편히 읽을 수 있어 좋고,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입꼬리는 올라가지만 모골이 송연해지는 여운이 머리를 훑고 지나감이 좋아 가끔 손에 쥔다.

가치관은 우리가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지를 판단하는 관점(다음 백과 중)이다 보니 요즘과 같이 다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잣대를 세워 가기가 녹록지 않다. 거기에 비 온 후 땅을 비집고 쑥쑥 나오는 죽순처럼 온갖 지면과 화면을 뚫고 튀어나오는 수많은 지식은 신념 형성에 오류를 범하게 하기도 한다.

`현대 철학 우화의 거장'이라 일컫는 레오 리오니 또한 그림책 <아주 신기한 알/레오 리오니/마루벌>에서 근거 없는 지식과 맹목적 따름의 위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도 악어와 닭을 본 적 없는 개구리 세 마리의 행동을 빗대어 우회적으로 독자들이 깨닫길 바라며 말이다.

이야기는 `어느 조약돌 섬에 개구리 세 마리가 살았습니다'로 시작한다. 그들 가운데 호기심 많은 은정 개구리가 돌무더기 속에서 눈처럼 희고, 한여름밤의 달덩이처럼 둥그런 돌을 찾아낸다.

닭이라고는 본적도 없는 현주 개구리가 알을 보자마자 닭의 알이라 확언한다. 어찌 아냐는 친구들의 말에 현주는 `그런 건 그냥 아는 거야'라며 으스대며 일러준다.

며칠 후 알이 깨지며 네 발로 걷는 동물이 나온다. 그들은 현주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던 터라 당연히 닭이라 여기며 함께 지낸다. 네 발로 걷는 닭이라! 그러나 독자들은 안다. 네 발로 걷는 동물이 악어라는 것을 안다. 작가가 그림으로 보여줬기에 안다.

그 대목에서 독자들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나 마지막 장까지 개구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을 만난다. 타칭, 자칭 닭이 된 악어! 우연히 만난 푸른 새에게서 새끼 악어를 찾고 있는 엄마 악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악어와 은정 개구리는 주저하지 않고 새를 따라 나선다. 먼 길이었지만 악어를 엄마에게 넘겨주고 돌아온 은정 개구리는 어이없다는 듯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런데 엄마닭이 아기닭을 뭐라고 불렀는지 아니? 글쎄 `나의 귀여운 악어야'하는 거야”라고 한다. 정말 우스운 이름이라며 웃고 또 웃는 개구리들을 보여주며 작가는 끝을 맺는다.

나를 되돌아보는 대목이다. 진실을 앞에 두고도 나의 고정관념 혹은 잘못 장착하고 있는 지식만을 믿고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한 발 떨어져서 나를 보면 독자가 개구리를 보듯 위험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각할 수도 있는데 두 눈 감고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대목이다.

명확하지 않은 지식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대목이다.

이와 어울리는 속담도 많다. `우물 안 개구리 격이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다' 등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이는 시대 불문, 남녀노소 불문하고 행하는 오류란 말일거다. 그러니 위안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화는 터무니없는 소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 현실에 뿌리를 둔 지금, 여기, 우리 삶이 반영된 철학이 있는 이야기임을 말하고 싶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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