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이 되기까지
조약돌이 되기까지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4.03.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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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집 앞 마트의 할인 행사에 갔더니 인큐베이터 호박을 수북이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꽉 끼는 비닐에 싸여 똑 같은 크기로 자란 호박은 볼 때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는 우리의 아이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돌보미 일을 하면서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유진이는 움직임이 많지 않은 아이였다. 여섯 살 어린 나이임에도 조심성이 많았고 행동은 슬로우모션처럼 느렸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반면 해인이는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책을 보자고 하면 첫 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일어나서 뛰어 다녔다. 그러니 넘어지고 깨지는 사건 사고가 수시로 발생했다.

저렇게 다른 아이들을 한 틀에 맞춰 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십여 명의 아이들이 내 품을 거쳐 갔지만 같은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소와 사자의 사랑이야기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소와 사자가 사랑에 빠졌다. 소는 사랑하는 사자에게 매일 아침 신선한 풀을 가져다주었고, 사자도 사랑하는 소에게 매일 아침 신선한 고기를 가져다주었다. 이 둘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났을까?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 이 세기의 커플은 결국은 파경을 맞게 되었다. 아낌없이 주었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관찰하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손녀딸은 말수도 적고 숫기가 없는 아이이다. 그런 탓에 어른을 만나도 인사를 제대로 못한다. “안녕 하세요” 그 한 마디를 못해 제 부모에게 어지간히 야단을 맞는다. 자꾸 야단을 맞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장소에 가는 것조차 꺼리는 것 같다. 그런 손녀딸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다. 날마다 똑같은 야단을 듣는 것이 저라고 마음 편하겠는가? 그렇지만 입이 안 떨어지는 걸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다른 아이들에게는 쉽기만 한 “안녕 하세요” 를 못하겠는 것을 어찌해야 한 단 말인가?

무릎 아픈 사람에게는 수영이 최고라는 친구의 권유로 수영을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운동신경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몸치인줄은 수영장에서 처음 알았다. 수영을 배우러 다닌 지 세 달이 넘어도 앞으로 가기는커녕 물에 뜰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힘을 빼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이 뜬다는 데 힘이 빼져야 힘을 뺄 것 아닌가? 떠보겠다고 버둥대다 물만 먹고 오는 날이 계속되다보니 수영장 가는 일이 점점 곤혹스러워졌다. 그 때 깨달았다. `나도 정말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나는 잘 하는데, 나는 잘 되는데, 하면서 나보다 못한 이들을 은근히 경시했던 나를 수영이라는 운동이 호된 물고문으로 훈계한 것이다.

정해진 틀에 맞춰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남은 다 잘하는 것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에게 나와 다르다며 손가락질 하고 있지만 그 손가락의 끝은 결국은 나를 향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다의 조약돌이 애초부터 둥글기야 했겠는가? 거칠고 모난 자갈을 바다가 품고 다듬고 기다려주었기에 조약돌이 되어 달그락 달그락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모양도 다르고, 재질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지만 둥글게 다듬어져 서로 상처 입히지 않고 저를 품어준 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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