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이 돼선 안된다
치킨게임이 돼선 안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3.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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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의대정원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정면으로 마주보고 달리는 두 자동차. 충돌이 두려워 먼저 방향을 트는 쪽이 겁쟁이(치킨)가 되는 게임이다. 운전대를 잡은 두 사람이 모두 상대를 `자존심 싸움에 목숨을 걸 바보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고 가속기에서 발을 떼지않을 경우 참사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정부와 의사협회가 한치 양보없이 벼랑으로 치닫는 모습이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를 연상시키지만 치킨게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결말에 운전대를 잡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애꿎은 환자들의 생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정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하며 시작된 의료 분쟁이 한달이 다 돼간다. 격렬한 진통이 우려되긴 했지만 양자 대립이 예상보다 심각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의법처리를 앞세운 정부의 강공에도 전국 의대생들이 집단 휴학에 들어가고 전임의들이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교수들이 사직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그제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려 16개 대학 교수들이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정부가 이탈 전공의들의 면허를 정지하면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경고도 했다. 교수들이 사직 시점으로 정한 25일은 전공의들이 정부의 행정처분 통보에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다. 이날이 지나면 정부가 직권으로 면허를 정지할 수 있다. 행정처분이 강행되고 제자들의 불이익을 좌시할 수 없다며 교수들이 병원을 박차고 나오면 기까스로 유지되는 응급 환자 및 중환자 치료 체계까지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병원의 마지막 보루인 교수들까지 집단행동을 예고한 상황에서도 양측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교수들이 집단사직을 밝힌 지난 12일에도 대통령은 “의료개혁을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부처에 주문했다. 대통령실도 교수 집단사직에 대해 법적 절차와 원칙을 강조했다. 정부도 의사협회도 대화창구는 열어두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평행선을 달리는 전제조건 앞에서 꽉 막혀있다. 의사들은 증원 철회를 대화 조건으로 고수하고 정부는 2000명 증원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불변으로 못박고 있다.

와중에 다행스러운 소식도 전해진다. 그제 뇌혈관외과학회와 뇌혈관내치료의학회가 성명을 내 “조속하고 합리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병원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의사 1300여명이 가입한 단체들이다. 두 단체는 끝까지 환자 곁을 지키겠다고 선언하면서 의·정 협의를 간절히 호소했다. 정부에는 “협의와 합의를 통해 정책의 모든 부분을 의사단체와 상의하라”고 했고 의사단체에는 “정부가 협의를 제안하면 책임감을 갖고 응하라”고 요청했다. 정부와 의협 모두 두 단체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태 장기화에 불안감이 커진 여론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여전히 의대 증원에는 공감하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에는 그닥 호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선 정부 대응방식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49%로 `잘하고 있다'는 응답(38%)을 상회했다. 규모와 시기 등을 재조정한 중재안을 만들자는 대답도 41%에 달했다.

정부는 2000명 마지노서 물러서고, 의협은 증원으로 기운 여론을 존중하라는 국민의 주문이 아닌가 싶다. 증원 문제를 아예 원점으로 되돌려 협상하자는 의사단체 주장은 정부는 물론 국민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증원을 전제로 협의에 나서 정부와 규모, 시기, 절차 등 구체적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정부도 정책의 목적이 의사집단을 무릎끓려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해야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 말고도 필수·지역·공공 의료체계 개혁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의사들의 협조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양측이 마냥 대치하다 설마하던 불상사가 발생하면 정책 추진 주체인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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