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경계선 넓히기
과거의 경계선 넓히기
  •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 승인 2024.03.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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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2000년대의 역사만 해도 벌써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지만, 과거는 왠지 어느 순간부터 멈추어 느려진 느낌이다. 변화와 발전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과거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과거'의 경계가 정체되어 있는 영향도 있는 듯하다. 그만큼 우리가 가까운 과거라고 여겨왔던 시절도 이제는 먼 과거가 되었으며, 그 시간 동안 생겨난 많은 것들이 이제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정도가 되었다. 각종 건축물을 비롯해 기록물·생활용품 등 사회상을 품고 있는 물품들, 이제는 기계, 미디어 자료 등 비교적 요즘의 것들이라고 생각되는 카테고리 또한 그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어 문화유산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역사에서 `근대'는 보통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는 시기를 말한다. 시점에 따라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경계가 다소 상이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근대와 현대의 경계조차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먼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관련 정부 부처 및 기관에서도 근현대 문화유산을 하나의 독립된 영역으로 인식하여, 이를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독자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전담 부서를 설치·운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관리와 보존, 전시·활용에 대해서는 타 유형의 유산에 비하여 체계적인 방안이 부족한 실정이고,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지정 근대문화유산들조차도 사후관리가 미흡하거나 훼손 방치되어 그 대책 마련에 대한 언급이 자주 흘러나온다.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는 A사 스마트폰의 십수 년 전 초기 모델을 지금도 가지고 있고, 가끔 그것을 꺼내어 보면 스마트폰 기술이 정말 많이 발전했다고 혼자 감탄하곤 한다. 그런데 이 핸드폰이 문화유산으로서 박물관에 전시된다고 가정하면, 고고유물처럼 전시장 안에 진열하는 방법이 맞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그 외형도 의미가 있겠지만, 실제 핸드폰의 가치와 의미는 그 내부의 소프트웨어에 있을 것이므로,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와 동작 방식, 기술 수준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전시 방법을 고안해야 맞을 것 같다. 이것을 일반적인 문화유산에 적용하여 다시 말하자면, 해당 문화유산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적절한 전시·활용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형태의 문화유산을 보존·복원하는 데에 있어서도 전자기기의 제작·수리와 같은 기술,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할 것이고, 이는 기존의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복원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도 중요 사진자료나 영상자료 등은 이미 시대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로 인식되어 보관·전시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인 소규모 전시관들의 경우 손상되거나 오염된 자료들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복원 방안이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근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을 보면, 사진보존, 뉴미디어보존 등 근·현대분야의 보존과학실을 운용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에 참고할만 하나, 앞으로 늘어나게 될 근·현대 문화유산의 관리를 위해서는 더욱 많은 곳에 다양한 전문가 양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문화유산의 종류와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고,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문화유산 보존·관리·활용의 필요성이 점점 더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미래유산을 발굴·보전하기 위해서 지금의 세대가 준비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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