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못찾으면 결국 국민 피해"…전문가들 제언 '이것'
"출구 못찾으면 결국 국민 피해"…전문가들 제언 '이것'
  • 뉴시스 기자
  • 승인 2024.03.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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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 논쟁 멈추고 합리적 중재안 마련을
의료체계 개선 없인 의대증원 취지 못살려

수가인상·1339부활·건보 지속가능성 모색을



의료계와 정부의 의대증원을 둘러싼 강대강 대치가 한 달이 넘게 지속되고 있지만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결국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전문가들은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합리적인 중재안 마련에 나설 때라고 입을 모은다. 또 의료체계의 개선 없인 필수·지역의료를 강화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을 없애겠다는 의대증원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계와 정부가 한 치의 양보없이 극한까지 몰고 가는 치킨게임은 사태 이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공급해온 의료체계로 돌아가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전공의, 의대생, 개원가, 대학교수 등 이해당사자들이 포함된 대표성 있는 협의체를 구성해 하루빨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의료계와 정부의 의대증원 규모 등을 둘러싼 입장차가 워낙 큰 데다 의료계 내에서도 정부를 향한 의정 협상의 전제 조건이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 "증원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의 대화협의체 구성" 등으로 달라 '조건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10개 국립대 의대로 구성된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거국련) 김정구 부산대 회장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단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구 부산대 회장은 "현재 의료계와 정부 간 입장차가 워낙 커 어떤 조건을 전제로 대화하려 하면 양측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단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말했다.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에 대한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응에도 변화가 생겨야 전공의들이 대화 테이블에 나설 여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출국금지, 법정 최고형, 면허정지 처분 등의 조치가 MZ세대인 전공의들의 반발을 더 키우고 있어 강압이 아닌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통해 제시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로 넘긴 데다 의대정원 배치계획이 먼저 나온 후 전체 의대증원 규모를 확정하고 재정 투입 계획을 발표했어야 했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없어 설득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수준의 중재안을 바탕으로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복귀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일단 내년에 어떻게 할지 합의한 후 의사 수급 추계 기구 같은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어 내실있는 의료개혁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또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의료소송 부담을 낮추고 수가 정상화를 통한 정당한 보상이 뒷받침돼야 필수의료 강화라는 의대증원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장은 "수가가 지금보다 5배 정도 높아져야 한다"면서 "인상된 수가는 의사 1인당 받는 돈이 늘어난다기 보다는 추가 인력 고용 등 시스템 확충에 주로 투입돼 결국 환자의 안전이 강화되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한 외과 전문의는 "과거 전공의들은 중환자를 살린다는 자부심과 희열 때문에 힘들고 돈을 못 벌어도 필수의료과를 지원했다"면서 "하지만 현재 걸핏하면 형사 소송을 당하고 10억대의 거액 배상 판결이 심심치 않게 나오면서 기피과가 됐다. 진료 중 경과실, 무과실,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을 없애려면 의사들이 전공의 때 필수진료과에서 수련받은 후에도 해당 진료과 전문의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의대정원을 확대해도 실제 의사로 배출되려면 10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시급한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김성근 여의도성모병원 외과 교수는 "외과는 절반, 흉부외과는 82%가 수련을 받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이런 분들이 실제 수련받은 과에서 일하도록 하는 게 (필수의료를 살리는)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표적인 기피과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증을 딴 후 피부·미용 등 다른 진료과목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23년간 저출산 장기화로 15세 미만 소아는 350만 명이 줄었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2500명이 늘어났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간판을 내건 의사는 적다. 소아과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고,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는 데다 어린이는 기대여명이 길어 손해배상금이 수억 원에 달해서다.



환자나 구급대원이 1339로 전화를 걸면 공중보건의사가 환자를 경증·응급환자로 신속히 분류해주는 방안도 응급의료체계 개선책으로 거론된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급대나 다른 병원으로부터 환자 수용 요청을 받고 수용이 가능할 것 같아 오라고 했는데 실제 환자 정보가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면서 "응급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병원을 지정해 후송하도록 하는 1990년대 응급환자 상담번호 1339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일반인 의료상담 전화인 NHS 111에 걸러오는 전화 중 5%가 999(응급전화번호)로 이관돼 구급차 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려면 119 구급대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인술 대전응급의료지원센터장은 "119구급대가 환자를 빠르게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이송하고 정확한 환자 정보를 제공해야 병원에서도 환자를 잘 살릴 수 있다"면서 "정부가 의지를 갖고 소방을 개혁해야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상 환자 이송도 의료행위의 일환으로 명시돼 있지만, 현재 자체 질평가만 있을 뿐 객관적인 외부 평가와 피드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미국·일본 등 해외에서는 지역사회별로 병원 전 단계에서 의료팀을 구성해 구급대원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고 있다.



오는 2025년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가는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과거의 무분별한 보장성 강화에서 벗어나 건강보험료의 효율적 이용과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의료개혁에 나서야 의료체계가 지속 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증가가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9년 소진되며 2040년 예상 누적적자가 680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7.4회로 가장 많고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도 12.7개로 세계 최다"라면서 "아무런 의료비 조절 기제가 없는 가운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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