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사라진 교실
질문이 사라진 교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4.03.13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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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질문 있나요?”

선생님들이 수업이 끝나갈 무렵 늘 했던 말이다.

우리나라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던지는“질문 있나요?”는 수업이 이제 끝났음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창시절 습관적으로 등교하기 전 달력을 보고 날짜를 확인했다.

그 당시 선생님들은 수업시간마다 날짜의 끝자리로 문제 풀 사람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호명이 되면 칠판 앞에서 문제를 풀어야 했다. 아는 문제보다 모르는 문제가 많았으니 문제 앞에서 끙끙댈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처럼 느껴 속상해 한 적이 많았다.

때론 문제를 풀지 못해 어쩌나 하는 순간 수업 종료 종이 울릴 때 안도의 숨을 내 쉰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문제 하나 못 푼다고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음에도 평생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사람)처럼 살았다.

학생들은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손을 드는 것도 용기를 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처럼 질문하는 것 자체가 친구들 눈에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질문을 통해 나의 무지가 탄로 나는 것은 아닌지 겁을 먹은 적도 있었다.

질문은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시험을 치르는 것도 학생들이 얼마나 모르는지 파악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교육과정의 하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시험을 보고 나면 정답을 맞혀본다.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로 점수로 학생의 수준을 판단하는 교실에서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이 학생들에겐 창피한 일이 돼 버렸다.

무지한 것을 공개하는 것처럼 여기게 되니 당연히 질문을 할 수 없다.

정답만 요구하는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지니 학생들은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교육부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출현 등으로 학생의 질문 역량이 중요해짐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질문하는 학교'120곳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학생의 질문 역량을 효과적으로 길러주는 교수학습 우수사례를 발굴·확산할 예정이다.

올해는 초등학교 54곳, 중학교 29곳, 고등학교 36곳이 `질문하는 학교'로 지정됐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먼저 질문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모델을 정부에 제안하면 연말에 우수 학교에 대해 표창할 계획이다.

미국의 물리학자로 1944년 핵자기공명을 발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는 수상 이후 기자들에게 “노벨상을 받게 된 원동력이 무엇이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과학자로 만든 건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그는 “브루클린에 사는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무엇을 배웠니?'라고 물었지만 나의 어머니는 `오늘은 선생님께 무슨 좋은 질문을 했니'라고 물어봤다. 어머니의 질문이 나를 과학자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교실에서 질문하는 것조차 교육부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교실에서의 질문은 학생 영역이 아니라 교사의 고유 영역처럼 여겨져 왔다. 질문할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하고 수능 점수로 인생의 실패를 맛봐야 하는 교육 환경에서 이젠 질문조차 교육 혁신인 세상이다.

배움엔 끝이 없다는 데 질문하지 않는 교실에선 배움은 없고 성적을 향한 경쟁만 남아 있다.

성적 지상주의 세상에서 대입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 새벽에 일어나 밤 늦도록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삶 속에서 호기심도 사치다. 궁금한 것도 대학 진학 후에나 하라는 질책을 받느니 침묵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교실은 그래서 늘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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