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 짓밟는 행정편의주의
생명수 짓밟는 행정편의주의
  • 이형모 기자
  • 승인 2024.03.13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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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오명' 청주시
대대적 나무심기 운동
가경천변·상당산성 등
공사 벌목에 의미 퇴색
수십년 수령 마구 훼손
시민들 곱지 않은 시선

 

지난 2011년 청주에서는 나무심기 열풍이 불었다. 나무심기에 동참하는 개인과 단체가 줄을 이었고, 손바닥공원 조성 기금 모금과 수목 기증에도 시민과 기업체가 팔을 걷고 나섰다. 민선5기 한범덕 시장이 `녹색수도 청주 만들기'를 슬로건으로 10년간 1004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 시장은 당시 나무를 `생명수(樹)'로 표현해 관심을 끌어냈다.

이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지면서 청주시내 곳곳에 가로수가 심어졌고 도시 숲, 학교 숲, 띠 녹지, 도시공원이 새로 조성됐다. 이때 성안길에 심어놓은 105그루의 소나무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나무심기는 1사1공원 가꾸기, 1사1산 가꾸기, 가족기념일 나무심기 등의 범시민운동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당시 조성한 녹지는 지금도 청주 도심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청주는 국토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고 동고서저의 침식분지 지형으로 인해 대기 정체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또 지리적 위치상 중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어 매면 봄마다 고밀도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는 `미세먼지 도시'의 오명을 벗기 위해 매년 상당량의 나무를 새로 심어 숲과 띠 녹지를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청주 공사장에서 수십 년된 나무를 마구 잘라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청주시는 지난해 5월부터 상당산성 진입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수령이 30년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 85그루 중 69그루를 베어냈다.

벚나무의 수령이 오래돼 옮겨 심을 경우 고사할 확률이 높다는 게 시의 설명이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나무를 심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나무를 베어내는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기인한 공사방식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나무를 잠시 옮겼다가 다시 심는 것보다 잘라내는 게 쉽고 공사비가 적게 들어서가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앞서 지난 2020년에는 흥덕구 가경천변의 30년 된 살구나무 일부가 잘려나갔다.

충북도가 하천 정비사업을 하면서 1994년 심은 살구나무 100여 그루를 베어낸 것이다.

봄철마다 꽃을 피우던 살구나무가 훼손되자 시민들의 거센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후 베어낸 자리에 다시 살구나무를 심었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행정기관에서 일괄적으로 나무를 베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공사를 하는 게 문제”라며 “이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기 않기 위해서는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사업이나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모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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