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일 뒷모습이 아름답다
변재일 뒷모습이 아름답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4.03.11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의 눈

공자가 살던 중국 춘추시대에도 물러날 때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던 위정자들이 많았나보다.

공자는 논어에서 용지즉행(用之則行) 사지즉장(舍之則藏)이라 했다. 세상에 쓰인다면 실력을 발휘하고 버려지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물러난다는 뜻이다.

2500여년 전 공자의 가르침은 요즘 한창 불을 뿜는 4·10 총선 여야 공천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막바지에 접어든 여야 정당들의 공천 어디에서도 정치인의 의리나 소신, 철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틀리면 목전직하 불만과 비난, 막말을 쏟아 내고 탈당하는게 여반장이다.

말로는 언제나 국민을 앞세워 포장하지만 행동에선 `금배지'를 향한 검은 속내만 엿보인다.

대표적인 인물이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몫 부의장을 지낸 김영주 의원(서울 영등포갑)이다.

그는 이번 공천과정에서 컷오프에 내몰리자 한치의 고민도 없이 국민의힘으로 당을 갈아 탔다.

김 의원은 진보성향의 민주당에서 여러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 부의장까지 맡았던 중진 정치인이었다. 말그대로 그의 정치경륜은 오롯이 민주당 덕으로 쌓였다.

그런 그가 당을 헌식짝 처럼 버리고 보수정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하긴 `정치적 불리'만을 내세워 소속 당을 버리고 말을 갈아탄 이가 어디 한 둘이랴.

하지만 충북의 다선인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달랐다.

5선인 변의원은 이번 총선에 당내 중량급 정치경륜을 내세워 6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컷 오프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 역시 당 지도부에 공천 재심사를 요구하는 등 반발했다. 그러나 끝내 경선에서조차 제외됐다. 그러자 그의 탄탄한 지역 기반을 고려해 무소속 출마설이 나돌고 탈당 가능성까지 점쳐졌다.

하지만 변 의원은 당의 입장을 존중했다. 6선 도전의지를 접었다. 그의 6선 포기 입장문 곳곳에는 절절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묻어났다. 그럼에도 그는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당에 잔류하겠다고 선언했다.

변 의원은 “보수의 텃밭에서 지난 20년간 헌신하며 당의 승리를 지켜냈던 결과가 이렇게 허망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도 “5선은 청주시민, 청원구민, 당원동지들과 함께 만들어온 과정이었기에 20년 몸 담은 당과 동지들을 떠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이 마지막 정치 무대가 될 수도 있었던 변 의원의 잔류 선택은 정략적 이익만을 따져 의리를 저버린 정치인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중차대한 결정을 위해서는 그만한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향한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아가고, 물러나고, 나타나고, 숨는 것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을 잘못하면 패가망신을 할 수도 있고,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20년 몸담은 당을 지킨 그의 결정.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권력과 명예를 내려놓는 일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수 칠 때 떠나기로 결심하기에는 무한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엄경철 선임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