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의 배신’과 그 책임
‘국물의 배신’과 그 책임
  •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 승인 2024.03.11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요논객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선거는 배신의 연속이다. 시스템 공천이라는데, 당의 주류가 이끌고자 하는 의중이 정확히 반영되는 현실이 마술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건 멀찍이서 관전하는 사람들의 평가고, 당사자나 열렬한 응원자들은 속이 뒤집힐 지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본질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거대 양당은 똑같이 절실하다. 간절함의 지점이 다를 뿐이다. 국민의힘은 2022년 3월9일, 대통령선거에서 이겼으나 의회 권력의 열세에 속을 끓여왔다, 그러니 세대교체나 개혁은 안중에도 없고 이기는 총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단 0.74% 포인트 차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압도적 과반의 의회 권력을 가졌으나 대통령 거부권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개인은 사법 공세에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니 `대오를 정비하지 않고서는 차기도 없다'라고 작심한 게 분명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대선에 국민은 멀미가 날 지경이다. 하지만 혼돈의 정치판에도 분명한 결론은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거대 양당은 사이좋게(?) 권력을 분점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정치는 이런 담합에 익숙하다. 양당의 담합에 정치개혁은 헛된 맹세가 됐다. 지난번에는 눈치를 보며 위성정당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자연스럽다. 선거구 획정도 선거를 한 달여 앞둔 2월 29일에야 마무리됐다.

이에 반해 경제에서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거대 기업 간의 담합(談合)은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공정거래법 40조는 담합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윤은 당연히 추징한다. 실행하지 않고 합의만 해도 담합이 된다. 명시적인 것만 아니라 묵시적인 합의도 담합이 될 수 있다.

담합을 답습하는 국회는 간접 민주주의의 대의성(代議性)을 완전히 상실했다. 국민이 냄비 안의 국물이라면, 의회는 숟가락 안의 국물이어서 맛이 같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다양한 처지와 견해가 존재해야 협치와 연정이 가능하다. 청군과 백군만 있으면 메시지는 오직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일 수밖에 없다. 소수자(小數者)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아예 들을 수 없다.

이런 국물맛에 `속았다'라고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국물의 배신'을 또다시 겪어야 할 판이다. 한자어를 쓰자면 배신할 괴(乖)에, 멀어질 리(離)가 합하여 이루어진 단어, `괴리'로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괴리의 국물맛'을 만든 조리사가 결국 유권자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거대 양당이 담합해서 만든 `레시피와 밀키트(meal kit)'에 의존해 차선(次善)에만 투표해온 결과다.

`그래도 최악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라는 항변은 한국 정치가 질곡에 빠져있음을 입증한다. 지역구를 100% 소선거구제로 뽑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변은 불가능하다. 정당 투표만이라도 이해와 요구를 정확히 대변하는 정당에 행사해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

대결을 부추기고 팬덤을 조장하는 정치인은 배격해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한점도 잘못이 없다는 `내 정치 무오주의(無誤主意)'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발에 흙이 묻지 않는 정치는 없다. 지지하는 정당, 정치인일수록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데서 건강한 정치가 시작된다. 이런 소극적 저항만 유효하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