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토론회 한달 중단이 답
민생토론회 한달 중단이 답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3.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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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통령이 여당의 선대본부장인가'. 엊그제 한 보수 신문의 사설 제목이다. 사설은 연초부터 이어지는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비판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지원을 위한 대통령의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고 직격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에게 희망을 전하겠다며 시작한 행사가 보수 언론까지 우려하고 만류할 정도로 폄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행사가 잦다. 지난 1월 4일 경기 용인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총 18회가 진행됐다. 나흘에 한차례 꼴이다.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뛰며 민생을 챙기겠다는 소통행정을 흠잡을 수는 없다. 도어스테핑을 없앤 후 불통 비판을 듣던 대통령에게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이 문제다. 역대 대통령들도 총선을 앞두고 구사한 언행 때문에 야당으로부터 선거에 개입한다는 공격을 받기 일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통령이 진두에 선 요란한 행사가 연속적으로 진행됐던 전례는 찾기 어렵다.

지역간 균형을 잃었다. 18회의 토론회 중 12회(서울 3회·경기 8회)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영남 4회, 충청 2회에 그쳤고 호남과 강원은 한 번도 없었다. 승부처가 될 접전지역과 보수 세몰이의 진원이 될 지역에 주력하는 모양새가 되다보니 총선용 설계 아니었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광주시장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태 호남행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오해를 낳을 소지가 크다.

`어떻게'가 없는 것도 지적받는다. 그동안 토론회에서 622조원이 투입될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비롯해 수도권 GTX(광역급행철도) 신설, 철도 지하화, 신공항 건설, 국가장학금 수혜 50만명 확대 등 천문학적 예산이 요구되는 정책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불투명하다. 대통령은 지난 7일에도 인천시를 찾아 “노래 두곡만 들으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도록 교통혁명을 일으키겠다”며 GTX 노선 조기개통과 경인고속도로·경인선철도 지하화 등을 약속했다.

이들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정부의 세수 확대가 필수지만 토론회에서는 감세정책이 쏟아졌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혜택 확대 등은 해당 납세자의 호응은 얻겠지만 정부 곳간은 축이 날 수밖에 없다. 야당은 “토론회 두달 동안 925조원을 퍼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장하긴 했겠지만 억지 주장으로 치부하기에는 사업 목록이 지나치게 넓고 두텁다. 지난해 감소한 세수가 역대 최대인 56조원에 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민자를 끌어들여 커버할 수 있다”는 정부의 반박을 미덥잖아 한다.

“국민을 직접 만나 민생을 신속하게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충정을 믿고 싶다. 하지만 민생토론회가 여당 선거를 돕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었다면 이미 실패했을 공산이 높다.

유권자들은 `당선만 시켜주면 밤하늘의 별도 따다 주겠다'는 식의 빌 공(空)자 쓰는 공약에 이미 신물이 날대로 났다. 총선이든 지선이든 공약과 정책으로 당선된 후보 얘기를 근자에 들어보지 못했다. 하도 속다보니 공약 감별에도 눈을 뜨게 된 게 우리 유권자들이다. 민생토론회 초반의 기대와 감흥은 행사가 거듭되고 초대형 사업들이 남발되면서 `무슨 돈으로?'라는 의구심으로 변질되고 있다. 선거 기간 내내 토론회가 강행된다면 이 의구심은 유권자들에게 모욕감으로 작동할 지도 모른다.

대통령실은 “총선 이후에도 민생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민생토론회는 연중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사를 1년 내내 이어갈 작정이라면 대통령의 선거중립 위반 논란을 피하는 차원에서라도 선거가 치러지는 한달 동안 중단하고 내실을 다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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