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영조 태실에 담긴 애민정신
청주 영조 태실에 담긴 애민정신
  • 김도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 승인 2024.03.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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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김도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김도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최근 조선 왕실 태실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해 가을 충북도는 경기도, 경북도, 충남도와 함께 조선의 가봉태실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올해는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연구지원 사업에 충북도, 경북도, 충남도가 공동으로 신청하여 국비를 확보한 상황이다. 이처럼 조선 왕실 태실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많은 지자체가 협력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보통 탯줄을 묻는 일을 안태(安胎), 또는 장태(藏胎)라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태실의 주인이 왕위에 오르면 다시 석물로 단장하는데 이를 가봉(加封)이라고 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태를 묻을 곳(태봉)이 선정되면 들판 가운데 둥근 봉우리를 선정하고 그곳에 금표비를 세워 농사와 나무 베기를 금지한 것이 일반적이다. 가봉 절차 역시 많은 물자와 인력이 소모되는 일이었으며, 금표의 범위도 이전보다 넓어졌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자신의 지역에 태실이 조성되는 것을 꺼렸는데, 이러한 내용은 실록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문종 1년(1451) 박연(朴堧)은 태실의 조성이 자손 만년에 내려간다면 나라의 전토(田土)는 줄어들어 백성들의 원망이 그칠 날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중종 12년(1517) 중종과 신하들이 나눈 대화에서는 길지를 택하는 일을 담당한 태실증고사가 내려가 백성의 집 근처를 지목하면 이를 피하려고 백성이 다들 재산을 기울여서 뇌물을 쓸 것이라고 한 대목이나, 안태할 당시 안태지 근처의 집이나 전지를 가진 백성이 모두 울부짖었다는 신하의 목격담에서도 그 폐해를 엿볼 수 있다. 더욱이 `현종개수실록'에는 “성상에서부터 왕자와 공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봉이 있었으니, 이러한 우리나라 풍속의 폐단에 대해서 식견 있는 자들은 병통으로 여겼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태실을 가봉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석담일기'에는 선조의 태실을 강원도 춘천에 묻으려다 충청도 임천으로 옮긴 것을 두고 “백성들이 굶주려서 돌을 운반하기에 매우 피로하였으니 한 임금의 태를 묻는데 그 해로움이 삼도(三道)에 두루 미쳤다”라고 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된다. 왕의 태를 안태한 고을의 격(邑格)을 높여주는 조치가 있었고, 왕이 즉위한 이후 진행해야 할 가봉을 흉년을 이유로 미루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특히 태실 제도와 관련하여 파격적인 개선 의지를 보인 왕이 있었으니 바로 영조이다.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민생 안정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던 왕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민생 행보가 태실 제도에까지 미쳤던 셈이다.

영조는 먼저 본인의 태실 조성에서 모범을 보였다. 태실 가봉 시에 석물과 비석의 크기도 줄일 것을 명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신하들은 사리와 체면이 걸려 있다고 하여 반대하였으나, 영조는 “만일 3분의 1을 감한다면 운반해 가기도 조금 나을 것이고, 이번에 감한다면 뒷날에 마땅히 이를 정식(定式)으로 삼아 준행할 것이니, 오늘날의 민폐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뒷날의 폐해를 제거하는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의지를 꺾지 않았다.

또한 영조는 안태의 규모를 축소하고, 형제의 태를 같은 장소에 묻어 절차를 간소화하였으며, 나아가 궁중의 어원(御苑)을 안태의 장소로 삼기도 하였다. 안태의 장소가 지방의 산봉우리가 아니라 궁궐 안으로 정하게 한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충북 청주시 낭성면 무성리에는 영조의 태실(충북도 기념물)이 있다. 태실의 전체적인 규모는 이전 왕들의 태실보다 확연히 작아졌지만, 태실 조성에 담긴 영조의 애민 정신을 알고 보니 오히려 웅장하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맞이하는 느낌이다. 날씨도 따뜻해지는 요즘 한 번쯤 방문해보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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