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의 조우
낯섦과의 조우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4.03.07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골프채를 살 때부터 예감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2월을. 골프가 시간에 자유분방한 백수의 코를 꿴다. 레슨을 신청하여 내게 통보하는 그이의 얼굴빛이 환하다. 신이 난 표정이다. 배우리라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다.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통에 물러설 곳이 없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한다. 부부가 같은 취미 하나쯤 가지면 좋겠다는 긍정으로 돌아선다.

모든 낯선 것에 대하여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사람을 사귀는 일이 어려워 주위엔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물건을 살 때도 가던 곳만 간다.

몸치인 내게 골프는 난데없이 나타난 낯선 벽이다. 벽을 넘고 싶은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제자리에 서 있는 작은 공은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 채를 잡는 손의 모양부터 서는 자세, 스윙하는 방법이 복잡하다. 이론이 가득 들어찬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따라와 주질 않는다.

잘 치고 싶은 욕심에 힘껏 내리친다. 공은 이쪽으로, 저쪽으로 가서 떨어진다. 똑바로 가는 경우가 드물다. 여기서도 O형의 센 고집이 나타난다. 말릴 수가 없다. 손에 잡힌 물집이 아프다. 자꾸 오기가 생겨 두 시간 내내 채를 휘두르는 날이 다반사다. 지쳐서야 연습을 끝내는 미련스러운 나다.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이순의 나이에 탁구공만 한 작은 공과 내가 씨름할 줄이야.

골프는 나처럼 하루에 오랜 시간을 연습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길게 꾸준히 해야 하는 법이다. 프로는 내내 몸에 힘을 빼라고 가르친다. 그래야만 공이 멀리 가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나온다고 한다. 나의 손엔 힘이 꽉 들어가고 채를 놓칠세라 세게 잡는다. 몸통은 회전되지 않아 뻣뻣하다. 아무리 가르쳐준 대로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따로 논다.

골프는 인생과 닮아있다. “힘을 빼세요.” 프로가 한 말이 귓전에 맴돌고 있다. 경직되어 힘주고 살아온 시간을 돌아본다. 살면서 힘을 빼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힘을 빼는 일은 마음먹고 연습을 해야만 할 만큼 쉽지가 않다. 아들을 붙잡고 있는 끈이 끊어질세라 안간힘 하는 나를 보아도 그렇다. 이제 놓아주어야 할 때다.

조금 서운한 말에도 이만큼 키워놓았는데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든다. 멀리 있는 아들이 안쓰러워 큰소리도 못 친 시간이 억울했다. 이토록 섭섭함은 보상심리로부터 생긴다. 아이의 재롱으로 웃고 기뻤던 시간이 잊힌 기억이 된 것이다. 키우는 동안에 행복했으므로 이미 다 받은 것일진대 따로 또 바라고 있어서다.

막 시작한 애송이가 프로골퍼들의 스윙 자세가 마냥 부럽다. 공도 잘 치지 못하면서 우아한 모습만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 예쁜 스윙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의 결과다.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바 른 자세에서 저절로 나온 멋진 포즈다.

한 마리의 나비가 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알에서 애벌레로 그리고 번데기가 된다. 이 시간을 견디어야만 우화(羽化)하여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것이다. 알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나비가 되고 싶은 나의 헛생각이 골프채를 맞고 날아간다.

골프는 어드레스부터 피니쉬까지 걸리는 시간 1초. 그 짧은 시간에 어찌 그리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처음 마주한 골프와의 낯선 조우다. 먼 훗날 나비의 춤사위 같은 나의 우화(羽化)를 꿈꾸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