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천개의 칼을 지녔다
입은 천개의 칼을 지녔다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4.03.0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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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2030 부산 엑스포 홍보대사로서 개최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맡아 두각을 보인 여인이 있었다. 유창한 영어 실력, 단정한 외모, 단호하면서도 유려한 말솜씨로 부산을 소개했다.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전적은 10여 년 전에도 있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발표가 있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세상의 이목을 온몸으로 받았던 유치위원회 대변인 나승연이다.

이렇듯 외국에 나가 나라의 일을 도맡아 했던 이들이 우리 역사 속에도 있었다. 600여 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으니 그들을 `역관'이라 했다. 사대부들이 위정자의 주축을 이루던 조선에서는 학문하는 자들 이외의 직업은 천시하던 시절이라, 역관 역시 중인 신분 이하의 계급에서나 할 수가 있었다. 허나 그들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교에서부터 무역까지 대외적인 모든 실무를 도맡아 해냈던 사람들이다.

이상각 작가님의 <역관열전/서해문집>에 지독한 신분 차별 속에서 묵묵히 국가를 위해 일을 했거나 개인의 부와 명예를 위해 일을 했던 역관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민간무역을 엄금했던 명·청과는 조공이라는 제도를 통해 국가에서 대외무역을 통제하며 상호교류했고, 일본으로는 통신사를 보내 교류를 하였다. 명·청으로 가는 사행단은 500여 명의 인원과 200여 필의 말이 동원된 6개월여 동안의 여정이었다 하니 그 규모가 가히 장대했을 듯하다.

국가는 이 사행단을 통해 외교, 무역, 선진 문화와 과학기술 유입, 정보수집 등 대외적인 일들을 해결했다. 이 모든 일을 역관들이 주가 되었다 보니 밀무역으로 갑부가 되는 역관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조정과 사대부들은 역관을 `역상'이라 하며 멸시하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밀무역으로 들여온 비단, 골동품, 책자들은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필요로 했고, 수익의 일부 또한 소수 위정자들에게 정치자금으로 들어 갔다하니 아이러니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명과 청은 그들 나라의 기록은 물론이거니와 주변국의 대소사들도 그네들의 역사서에 기록을 했다. 그 과정에서 고의든 타의든 잘못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를 바로잡는 일을 하는 이들이 역과이다. 역관들이 해결하여 조정의 큰 시름을 덜어준 역관이 있었으니 홍순언과 이추이다.

명이 그들의 역사서인 <대명회전>에 `이성계는 이인임(고려 말 친원 정책을 쓰다 친명 세력에 숙청)의 아들이며, 우왕, 창왕, 공양왕, 세자 왕석까지 죽이고 나라를 얻었다.'고 기록을 한 종계변무 사건이 있었다. 조선 조정은 이 기록을 수정하려 수차례 명으로 사신을 보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다 200여 년 후인 1584년(선조17) 역관 홍순언이 이를 해결하였다. 그러자 선조는 광국공신으로 삼고 당릉군이라는 군호까지 내리며 치하를 했다.

또한 청은 인조반정에 대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반역이라는 의미인 `찬역'이라 기록을 하였다. 이를 발견한 영조는 열세 차례나 사신을 보낸다. 결국 역관 이추가 그들을 설득하여 1738년(영조14)에 수정본을 받아 온다. 이추는 30여 년 동안 수석 역관으로서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이 조정의 이익에 도움이 되었던 역관이라면, 개인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일본에게 `조선국 조수초목조사' 정보 유출 허가를 받아 일본에 팔아 넘겨 1721~1751년 동안 한반도의 동식물 조사 프로그램을 가동하게 일조를 한 최상집과 이석린이란 역관도 있다. 이는 당시의 자본의 주축이던 은의 유입량 판도를 바꾸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 `조선 최고의 외국어 달인, 종횡무진 조선을 뒤흔들다. 외교관으로서 다양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뉴프런티어 … 양반의 역사에 가려진 중인신분의 전문가, 신분의 벽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다.'라는 말로 작가는 역관에 대해 정의를 내린 문장이 있다. 오늘날 세계속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지녀야 할 의미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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