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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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4.03.0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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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여름장마처럼 내리던 겨울비가 눈으로 바뀌자 가족 단톡방이 눈 소식을 전하느라 바빴다. 눈이 예전만큼 좋지는 않다면서도 눈 내리는 날의 낭만이 담긴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남편도 어린 시절 함박눈이 내리는 마당에서 혓바닥으로 눈 받아먹던 생각이 난다는 글과 함께 베란다에서 찍은 거리풍경을 올렸다. 그 짧은 글에 헐거운 내 눈물샘은 또 열리고 말았다. 내리는 눈을 혓바닥으로 받아먹으며 마당을 뛰어 다니는 남편의 모습이 그린 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자라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긴 세월 엄살 한 번 부리지 못하고 살았다. 가장이라고는 하지만 그 또한 내리는 눈을 혓바닥으로 받아먹으며 좋아라 뛰어다니던 어린 소년이었던 것을….

손녀딸의 돌잔치를 치른 날 걸려온 남동생의 전화에도 내 눈물샘은 속절없이 열렸다.

“누나 축의금을 많이 못 넣었어. 그래도 내가 많이 축하하는 거 알지?” 동생의 형편에 비하면 과하게 많은 액수였다. 우리 집에 일이 생길 때마다 형편에 넘치게 마음 표시를 해 온 동생이었다. 그 때마다 그 애의 살림이 얼마나 축이 났을지 알기에 받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어린 날 동생은 귀앓이를 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으니 귀에서는 늘 진물이 났다. 그것이 동생의 잘못이었겠는가? 철없는 누나는 귀고름 냄새가 나는 동생을 표 나게 피했나보다. 얼마 전에야 동생은 “누나가 나한테서 냄새난다고 피해 다녔잖아”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았다. 가까운 가족까지 저를 피하니 사람들 대하기가 오죽 힘들었을까? 선생님의 설명이 잘 들리지 않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얘기도 털어놓았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다소 반항적인 그 애를 버거워만 했지 그 애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동생의 불우했던 어린 날에는 까칠한 누나의 철없는 행동도 있었음을 동생의 말을 듣고 서야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무심한 누나인가?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늦은 용서를 구하며 헐거워진 내 눈물샘은 또 열리고 말았다.

크게 한 번 웃을 때마다 우리 몸은 엔돌핀을 비롯한 여러 가지 쾌감 호르몬을 생성한다고 한다. 웃음만으로도 불안한 감정이 억제되고 행복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울음은 불운이나 재앙과 연결 지으며 억제를 강요해왔다.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한다는 말로 남자의 울음을 견제했고, 우는 아이에게는 산타할아버지도 선물을 안 준다는 말로 아이들의 울음조차 제재에 들어갔다. 울음에도 마음을 정화하고 정서적 회복을 돕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는데 말이다.

내가 남편의 눈물을 처음 본 것은 신혼여행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였다.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도 못 가게 된 자기를 공부시켜주신 형님이 계셨기에 자기의 인생이 이렇게나마 풀렸다며 신혼여행가서 쓰라고 아주버님이 쥐어주신 돈 봉투를 만지작대며 남편은 소년처럼 훌쩍였었다. 남편의 그 울음에서 형제간의 진한 우애를 보았기에 나는 그 이후로 시골아주버님 내외분을 부모님처럼 섬기게 되었다. 울음으로 표현된 진심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없다.

어! 하다 보니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적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인생, 웃음에도 눈물에도 인색하지 않게, 가진 것 별로 없어도 감정만은 풍요롭게 헐거워진 눈물샘 조이지 않고 그렇게 살아보리라고 마음 약한 나 자신을 두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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