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식솔이 되어
봄의 식솔이 되어
  • 배경은 독서강사
  • 승인 2024.03.0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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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독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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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봄에 눈 뿌리기” 작전이라도 하듯이 화창하던 날에, 이제는 봄 밖에 올 것이 없는 하늘에서 느닷없이 눈이 내린다. 어느 계절보다 봄은 더디 온다. 흥미진진하던 드라마도 끝나고 연두빛 멀미가 날 것을 기대하며 봄을 기다리건만 날씨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유독 봄이 기다려지고 봄은 오지 않는 걸 보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다시 조신하게 책장 앞을 서성여 본다.

책장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작품하나를 빼어보니 어떤 꼬마가 우산이 뒤집히도록 비바람에 맞서고 있는 표지다. <`문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비 야마다란 미국작가가 쓰고 매 베솜 중국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작품이다. `문제`로 뭔가를 하려는 모양이다.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아득한 거리에서 다가오는 까닭 없는 불편함과 어색함, 내장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알 듯, 모를 듯한 불안으로 시간을 촘촘하게 보내는 때가 있었다.

내 몸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서야 표표히 사라지는 불안이란 녀석은 이렇게 불한당이다. 하여, 마라맛 일상은 참 버겁다.

작품 <문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는 어린이가 마주한 문제에 대한 고민을 차근히 합리적으로 풀어낸다. `어느 날 문제 하나가 생겼거든요'라고 아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꼬마 매우 지혜롭고 현명하다. `저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문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모저모 생각한다.

쫓아보기도 하고 팔을 휘저어 보기도 하지만 문제는 흐트러짐 없이 아이의 머리위에서 점점 커져간다는 것이 문제다. 나처럼 아이도 처음에는 피해보려고, 모른 체 하려고 했으나 문제는 집요하게 따라온다. 비바람과 태풍으로 혹은 두려움과 어둠으로.

아이는 생각한다·생각한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는 순간만이 존재한다고 했던가. 그는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무너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낼지에 대한.

지난날을 돌아보면 적잖이 조급했다. 일 앞에 무턱대고 뛰어들거나 행동으로 옮기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이 많다.

먼저 침착하고 숨을 고르고 생각을 하는 보이지 않는 준비의 과정이 없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같은 지점에서 넘어지곤 했다. 경솔하게 말이 앞서거나 순서 없이 움직이다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어쩌면 난 내 인생의 도망자였을지도 모른다. “갈매빛 눈매는 성글고 그윽하였으나/ 그 기억의 분화구를 들여다보기 두려워/ 한 번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나희덕_그는 먹구름 속에 들어 계셨다_부분> 작품 속 아이의 고백처럼 문제 속으로 들어가니 문제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준비 없이 두려움에 엉거주춤 문제와 마주보다보니 성글고 그윽한 갈매빛 문제의 눈매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음을 새삼 알게 된, 늠름한 아이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봄은 그저 기다리면 온다. 내가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기다림의 밥을 먹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봄의 식솔이 되어 가벼운 츄리닝 차림으로 산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작은 바람에도 떨어지는 살구 꽃잎을 맞고 싶어 종종 걸음으로 나무 밑을 서성일 것이다.

새 봄으로부터 시작되는 날 만큼 있을지도 모르는 총천연색 문제 앞에 미리 겁먹지 말자. 문제의 핵심은 나다. 내가 괜찮으면 다 괜찮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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