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순을 바라보며
새순을 바라보며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4.03.03 1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입춘이 지나고 봄이 오는 듯하더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다시 몸을 웅크리게 된다.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더니 봄은 겨울처럼 춥고, 뒤죽박죽 한 계절에 마음마저 심란하다.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려 매일매일 잠들기 전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거실 한편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어놓은 식물을 키우는 공간에 식물등을 끄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건조한 겨울에 식물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까 봐 시작한 행위인데 점점 식물들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분무기를 들고 초록의 식물들을 향해 물을 뿌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텅 비는 느낌과 함께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잡념들이 어딘가로 가라앉는 듯한 평온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엄마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을 보며 첫째 아이가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아직은 단풍잎만 한 손이 누르기에 만만치 않다. 몇 번을 애쓰던 아이는 재빠르게 포기하고 자기 할 일을 찾아 떠난다. 홀로 남겨진 나는 후련함을 한껏 느끼며 다시 초록으로 빠져든다. 한번 누르면 직장 스트레스가, 또 한 번 누르면 육아 스트레스가, 다시 한번 누르면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것처럼 경쾌하고 산뜻하면서 초점 없는 루틴이 지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칙칙 소리만 나던 한밤중 구석에 자리 잡은 화분 속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보였다. 들리지 않고 보였다고 한 것은 이 존재를 찾자마자 봄이 전해주는 싱그러운 느낌을 온몸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죽지만 않을 뿐 좁디좁은 화분 안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듯했던 네모필라가 아무도 모르게 새순을 엄청나게 내밀고 있었다. 한, 두개가 아니었다. 족히 열 개는 돼 보이는 새싹이 화분 한가운데서 보송보송한 얼굴을 뽐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몇몇은 벌써 키가 꽤 커져 있었다. 이 정도까지 크는 동안 왜 진즉에 발견하지 못했을까. 역시나 너희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물을 뿌리고 있었구나. 하루를 보내며 쌓여온 묵직한 상념들이 흩뿌려지다 사라지는 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라고.

오랜만에 새순과 눈을 오래도록 맞추고 있으니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가 따뜻한 봄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기지개를 펴고 일어선 모습이 새삼 무척이나 기특하다. 하나의 싹을 흙 밖으로 내밀기 위해 가려진 저 밑바닥에서부터 얼마나 애를 썼을까. 사람 손에 심기는 식물조차도 주어진 생을 다 하기 위해 순간순간 애를 쓰는데, 그 손을 가진 나는 멈춰 있는 건 아닌가. 가만히 석상처럼 서 있다가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와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는 건 아닌가. 새순을 바라보는 얼굴이 괜스레 숙연해지는 찰나이다.

네모필라는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완전 파랗지도 않고, 그렇다고 흐리멍덩하게 묽지도 않은 우아하고 앙증맞은 푸른 계열의 꽃을 여러 개 피운다고 한다. 처음 씨앗을 심고 새싹이 나고 본잎이 나던 순간에는 이제나저제나 꽃이 언제 피려나 수시로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재촉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어디 꽃망울이 생기지는 않았나 무성한 잎을 휘적휘적 해봐도, 결국은 손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저 지금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될 일이다. 꽃이라는 절정을 향해 무던히 노력할 푸릇한 잎 옆에서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내 몫을 다하며 나에게 주어진 생을 충실히 살다 보면 어여쁜 얼굴이 인사를 건넬 때 아름다운 얼굴로 마중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