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과 뒷집 사이
앞집과 뒷집 사이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4.02.27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포럼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계절이 드나드는 모습이 이리도 다를까. 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가깝지도 않다. 물론 가깝거나 멀다는 것은 보이는 것에 따른 것은 아니다. 담하나 사이지만 들어 가지지 않는 집이기에 하는 말이다.

뒷집의 주인은 할머니이다. 지금은 주인을 잃었다. 요양병원에 가셨다는 말은 들었는데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소식이 없다. 그간 뒷집의 마당은 온갖 식물들과 들짐승, 날짐승들의 요람이 된지 오래다.

할머니가 계실 때만 해도 뒷집은 산수유와 아름드리 자두나무가 마당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화단에는 분홍 장미와 참나리 꽃이 계절을 알려 주었고, 깨끗하게 정돈이 된 마당에서는 마실 온 할머니들의 정담 소리가 담을 넘곤 했다. 대뜰에 앉아 봄나물을 다듬던 할머니가 봄볕을 못 이기고 자울자울 조시던 모습이 지금도 아삼아삼하다.

앞집도 빈집이기는 매 한가지다. 앞집의 주인도 할머니셨는데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 계시다 돌아가신 지가 5년이 훌쩍 넘었다. 그 후로 관리를 하는 아저씨가 드나들더니 사람들이 그 너른 텃밭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앞집은 왼쪽 한 옆으로 집을 두고 집의 앞과 우측의 너른 텃밭이 있는 구조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해마다 같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두해 동안은 두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한 집은 서울에서 우리 골목으로 이사를 와 세를 얻어 사는 중년의 부부였다. 다른 한 집은 밭과 맞붙은 집의 노부부였다. 그런데 그 두 집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른 봄, 밭을 갈고 고랑을 만드는 것부터 달랐다. 노부부는 2층집을 소유한 부유한 분들이었다. 그러니 밭을 만들때면 기계와 사람을 사서 만들었지만 서울에서 온 중년 부부는 삽과 괭이로 직접 흙을 돋우고 고랑을 만들었다.

노부부는 농사도 이골이 나신 분들이라 그런지 가을이면 고추며 콩이 풍작이었다. 반면 중년의 부부는 열의에 비해 농사는 초보였다. 같은 밭이었는데도 고추도 그렇고 깨도 수확이 반실이었다.

중년 부부는 농약도 정말 많이 쳤다. 그 바람에 앞집과 붙어 있는 우리 연못의 물고기들이 모두 죽어 나갔다. 그렇게 두 집은 아웅다웅 불편을 들어내고 큰소리를 내는 것이 빈번했다.

결국 중년 부부는 그 다음해부터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노부부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아들과 겨끔내기로 한 해 농사를 짓더니만 2년 전 부터는 동네 할머니들 몇 분을 모아 농사를 짓고 계신다. 첫새벽부터 방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할머니들의 수다에 나도 덩달아 부지런을 떨게 된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소리가 담을 넘고 창문을 두드린다.

앞집과 뒷집의 중간인 우리 집은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집이다. 봄이면 뒷집에서는 노란 산유수 나무에서 재잘대는 새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렇게 산수유가 질 무렵 앞집의 텃밭에서는 할머니들의 발소리가 잦고 수다가 시작 된다. 그러니 우리 집은 뒷집과 앞집의 딱 중간인 통로인 셈이다.

하지만 어느 날 두 집의 주인이 바뀌면 두 집 사이의 통로도 경계도 달라 질 것이다. 그 날이 더디 왔으면 좋으련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된단 말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