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眞文)과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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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4.02.27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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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국장(진천주재)
공진희 부국장(진천주재)

 

담헌 이하곤은 숙종 3년(1677) 지금의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에서 태어나 경종 4년(1724)에 타계했다.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셋째 아들인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아버지는 문형(文衡·대제학)이었던 이인엽(李寅燁)이고, 어머니는 인천부사 조현기(趙顯期)의 딸로 `여사(女士)'라는 칭호를 들었을 만큼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춘 부덕(婦德)한 여성이었다. 부인은 이조판서 송상기(宋相琦)의 딸이다. 부인 은진송씨의 할아버지는 문곡(文谷) 김수항(壽恒)과 처남 사이인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이다. 외종조할아버지는 초야의 학자로 이름 높았던 `창선감의록(創善感義錄)'의 저자 조성기(趙聖期)이다.

1708년 진사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생원과에도 합격하여 세마부수(洗馬副率)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계속 수학하면서 대과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1722년 과거를 단념하고 고향인 진천군 초평면으로 내려와 학문과 서화에 힘썼다.

훌륭한 가계와 학연, 거기에 특출한 재능을 타고난 담헌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엄한 가정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아들 이석표(李錫杓·1704-?)가 아버지 이하곤을 추념하며 지은 `담헌행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차차 성장하면서 어머니에게 수학하였다. 어머니는 과독(課讀)을 심하게 하였는데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는 기색이 있으면 가차없이 꾸짖고 야단을 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며 가르치니, 공은 비로소 발분독서(發憤讀書)하여 장구소유(章句少儒)가 되는 것을 기약하지 않았다. 이에 문사(文辭)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가시(歌詩)를 한 것이 이미 사람들을 놀라게 할 때가 많았다 … 유독 서적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책을 파는 사람을 보면 심지어 옷을 벗어 책을 사니, 모아놓은 것이 거의 만권에 이르렀다. 위로는 경사자집에서 아래로는 패관소설, 의서, 점술서, 불가서, 도가서 등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담헌은 만권의 장서를 구비하여 진천 생가에 비치했는데 이 서루를 완위각(宛委閣) 또는 만권루(萬卷樓)라 하였다. 그리고는 `내집에 있는 게 무엇인가? 서가에 만권서 꽂혀 있네. 물마시고 육경을 풍송(諷誦)하니 이런 맛 과연 어디다 비기리(두타초)'라며 만족해했다.

조선 영조 때 서예가였던 강준흠은 완위각을 이정귀의 고택, 류명천의 청문당, 류명헌의 경성당과 함께 조선 4대 장서각 중 한 곳으로 꼽기도 하였다.

담헌은 진문(眞文)의 조건과 진문창작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래서 그 식(識)이 고매한 자는 그 문(文)이 고매하고 그 식(識)이 해박한 자는 그 문(文) 또한 해박하니, 처음에 그 고매하고 해박함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각 그 심중(心中)에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흉중(胸中)에서 유출되는 것이 자연 이와 같게 된 것이다.(두타초)'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가 편가르기와 적대감으로 무장한 정치진영들의 전쟁터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과 주장,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진영내부의 확증편향을 확대 재생산한다. 문화와 취향에서는 자신만의 개성을 한껏 뽐내는 시민들이 정치영역에서는 상대편을 향해 서로를 오래된, 또 새로운 기득권이라며 공격하고 악마화한다.

정치적 선동에 이끌려 분노가 이성을 압도하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며 상생과 공존의 길을 묻는 나그네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억지로 조탁하지 않고 지식과 식견의 확립을 통해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된 문장(이상주)'을 추구하는 담헌의 진문(眞文) 정신이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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