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벚나무
아낌없이 주는 벚나무
  • 이연 꽃차소물리에
  • 승인 2024.02.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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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이연 꽃차소물리에
이연 꽃차소물리에

 

봄으로 가는 길목이 험난한 요즘 날씨이다. 이걸 꽃샘추위라 해야 할지 아직 겨울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우암산 이른 아침 설경은 마치 신선이 살 것 같은 그런 세상처럼 보이다가 한낮에는 안개가 서린 듯 신비스럽다.

베란다에서 휴대전화로 풍경을 찍으며 우암산 순환도로의 벚나무 꽃눈에 생각이 멈춘다.

그동안 따스했던 날씨 덕에 꽃눈을 부풀리는 중이었을 텐데 느닷없이 내려앉는 눈에 놀랐을 것이다. 이제 꽃눈은 부풀리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날이 따스해지기를 기다리며 숨 고르기를 하리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온몸에 으슬으슬 소름이 돋는다.

서둘러 찻물을 올리고 다관에 벚꽃을 넣었다. 이번 추위가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이기를 바라며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을 기다린다.

만개할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찬사를 듣는 벚꽃, 꽃잎이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에 서 있다 보면 당연히 그런 수식어를 들을 만하다는 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따끈한 한 모금의 차가 목을 타고 내려가 전신으로 퍼진다. 오감이 열리며 온몸의 세포들이 설렘으로 움찔움찔 소란스럽다.

대다수 사람은 꽃을 차로 덖으면 아름다운 색과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을 거로 생각한다.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그런 환상으로 시작했다가 꽃차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이 들어 중간에 포기할 뻔했었다.

꽃의 색이 곱고 예쁘면 찻물도 그대로 우러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향기가 진한 꽃도 덖어놓으면 향기가 사라지기도 해서 실망할 때도 있다.

반대로 꽃 본래의 향기와 모습을 간직한 채 감탄을 하게 하는 꽃도 있다.

그러니 꽃차에 대한 환상은 절반은 맞고 나머지 반은 환상을 내려놓는 게 옳을 듯싶다.

봄을 찬란하게 하고, 사람들 마음을 계절 내내 들뜨게 만들며 점령한 것에 비하면 벚꽃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향기와 맛은 딱 중간쯤이다.

어쩌면 눈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기대치가 높아서 생겨버린 편견일 수도 있겠다.

벚꽃은 차로 다시 탄생하기 전 이미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모습과 향기로운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을 테니 말이다.

이번 추위가 지나면 숨 고르기를 하던 벚나무들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꽃망울을 부풀리며 봄을 빛나게 하리라.

이에 질세라 사람들은 전국 벚꽃 개화 지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벚꽃 명소로 여행할 꿈을 꾸리라. 사람들 마음을 흔들고, 꽃잎이 흩날릴 때 보면 나무 어디에도 강인함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벚나무지만 알고 보면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 주는 나무이다.

목질이 단단하고 보존력이 우수해 우리나라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목판 절반 이상 벚나무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또 가구나 식기로 만들어 쓸 만큼 나무의 결도 아름다워 목재로의 가치로도 훌륭하고, 매연과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도 봄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강한 자생력과 생명력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가려움증이나 두드러기와 숙취 해소에도 좋아 꽃차로서의 가치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매년 봄마다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지 않던가.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전 모습을 가만 들여다보라. 간절하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전해져온다. 벚꽃이 지닌 여러 가지 꽃말 중에 `삶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영혼'이 내 가슴에 스며든다. 말간 유리 다관에서 꽃잎이 하늘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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