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입니다
나는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입니다
  •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 승인 2024.02.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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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논객

외곽 개발로 계속 팽창하는 도시는 대중교통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규모가 커지면 대중교통 사각지대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외곽 개발을 멈추지 않는 것은 농지나 임야, 심지어 그린벨트를 대지로 바꾸는 택지개발에서 엄청난 개발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로를 만들어야 하니 토목업이, 식구 수만큼 승용차가 필요하니 자동차산업도 덩달아 발전한다. 그러니 대중교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차라리 버스 타는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대중교통 개선을 외면하는 동안 청주는 이미 대중교통이 불편한 도시가 됐다. 인구 1000명당 시내버스 대수는 0.57대로, 대전 0.69대, 세종 0.80대보다 적다. 면적 1㎢당 대수도 0.51대로, 대전 1.88대, 전주 1.98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대중교통 개혁은 결국 철학의 문제다. 도시 팽창을 멈추는 게 대전제이지만 세상이 당장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교통에 우선순위를 두고 승용차 이용을 어느 정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버스전용차로제 도입'이나 `승용차의 도심 진입제한' 등이 그 예다.

`승용차는 불편하고 대중교통은 편리하다'라고 인식이 개선돼야만 버스 승객이 늘어난다. 노선 확대와 증차 등은 버스의 수익률 증가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청주시는 그 반대다. 대중교통 이용을 포기하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연간 5000만 명에 가깝던 시내버스 승객이 2023년에는 4000만 명에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줄었다.

25년 전쯤 얘기다. 청주시의 한 간부 공무원이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 도색기술이 전 세계 최고예요. 정확히 1년이 될 때쯤이면 지워지기 시작해서 해마다 칠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 전에 지워지는 일은 없어요. 2년이나 3년 가는 법도 없고.”

도색업체가 일거리를 해마다 수주할 수 있도록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얘기다. 당시 젊은 혈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던 기억이 있다. 준공영제 실시 후 청주시가 전문업체에 의뢰해 야심 차게 내놓은 노선 개편 용역 결과를 보고 25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씁쓸했다. 계속 악화하는 대중교통의 생태계에 대처하면서 그저 10년, 20년 위험을 관리하겠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송역에서 청주 도심으로 나오는 노선버스는 오송읍의 16개 정거장을 역행(逆行)하는 노선으로 바뀌었다. 오류를 지적하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지만 시정하지 않고 있다. `수요응답형 DRT(콜버스)' 도입에 따른 일부 긍정적 효과에 취해 보완책에 대해서는 한눈을 감고 있다.

외곽순환도로로 고속 순환버스가 다녀야 한다. 애초 약속했던 대로 간선, 지선을 연결하고 곳곳에 환승 거점도 만들어야 한다. 마을버스와 DRT, 행복택시, 공공자전거까지 모든 공공체계를 연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전제를 바꾸지 않는 이상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도 청주시의 대중교통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제 청주의 대중교통은 심정지 됐다'라며 산소호흡기를 떼는 임종(臨終)봉사자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중교통에 대한 철학은 `대중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청주시장과 청주시의회가 대전제에 합의하고 시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장기목표가 돼야 한다. 10년째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의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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