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고 보살피다
지켜내고 보살피다
  • 박소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 승인 2024.02.25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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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며칠 뒤면 일제의 부당한 침략에 맞서고자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던 3·1절이다. 1919년 3월 1일 일본에 빼앗긴 우리나라를 되찾고자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1910년 일본에 강제로 병탄 된 뒤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했던 35년은 어둠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가 사라지니 우리 말과 글, 우리 고유의 역사가 사라져 갔다. 삶의 모든 곳에서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라진 것은 또 있다. 바로 지방마다 설치되었던 읍성과 관아가 그것이다. 조선시대 각 지방에는 그 지역을 원활하게 다스릴 수 있도록 고을의 중앙에 관아를 만들었다. 그 주변으로 여러 시설과 도로망이 발달하였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읍성을 둘렀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나라를 더 쉽게 지배하기 위해 지역 중심지를 연결하는 `신작로'라는 도로망을 건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수많은 관아와 읍성이 파괴되고 만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전국의 모든 관아와 읍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서산 해미읍성처럼 원형이 잘 남아있는 일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충청북도 지역에는 관아와 읍성이 제대로 보존된 경우는 거의 없고, 그저 관아의 일부 건물이 남아서 그곳이 관아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간혹 TV에서 사극 드라마가 방영될 때면 그때마다 고을의 수령이 죄인을 심문하는 장면이나, 혹은 죄인이 감옥에 갇혀있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한다. 그래서 많은 이가 `관아는 죄인을 벌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관아의 옛 모습을 재현해 놓은 장소마다 동헌 앞에는 곤장을 맞는 형벌 틀이 설치되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물론 죄인을 심판하는 것 역시 관아의 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외에도 행정, 치안, 사법 등등 관아에서는 수많은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요즘 행정 업무는 도청, 치안은 경찰서, 사법은 법원으로 담당 기관이 나누어져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고을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업무를 관아에서 도맡았던 것이다. 아무리 향리들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해도,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이 얼마나 능력자여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그런데 우리 지역을 다스렸던 수령 중에 의아스러운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연풍 현감을 맡았던 김홍도이다. 맞다,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가 김홍도! 그런데 화가 김홍도가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이라니. 김홍도가 수령이 된 까닭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제작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화원으로서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어진을 그리는 일에 김홍도는 세 번이나 참여하였다. 1773년 영조와 세손(정조), 1781년 정조, 1791년 정조. 김홍도의 어진 참여 과정과 충청도 연풍 현감으로 부임하게 된 내용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연풍은 지금 괴산군 연풍면을 말한다. 괴산군은 과거 여러 개의 고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현재 관아의 동헌 건물이 각 지역에 남아있다. 괴산 읍내의 괴산동헌, 청안면의 안민헌, 그리고 김홍도가 부임했던 연풍면의 풍락헌이 그것이다.

김홍도는 1791년 12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약 3년 정도 연풍현에서 근무하였다. 하지만 운이 나쁜 것인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고부터 연풍현에는 큰 화재, 홍수, 가뭄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굶주리는 백성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김홍도는 자기 재산을 털어 곡식을 마련해 백성들을 보살폈다고 한다. 수령을 다른 이름으로 임금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기르라는 뜻을 담아 `목민관(牧民官)'이라 불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에 딱 걸맞은 행동이었다.

김홍도 외에도 우리 지역을 다스렸던 수많은 수령이 있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연유로 이곳에 부임해 왔어도, 자기가 맡은 고을이 풍족하고 백성들이 늘 평안하기를 바랐던 그들의 마음은 모두 같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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