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 습관은 잡식성이다
나의 독서 습관은 잡식성이다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4.02.25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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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이와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기분이 좋아질 거라 상상하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생각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당혹스럽거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아. 저렇게도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정도였다.

독서토론을 하는 내내 내 귀는 나잇값을 하는 것인지 예전에 비해 순해져 있었다.

하지만 귀가 순해졌다고 한들 내 귀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말을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내가 읽고, 그가 읽은 책의 내용들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은 무미건조한 내 일상에 설렘 가득한 바람이었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였다. 단편소설 7편을 엮어 놓았는데 장르는 SF소설이다. 모인 사람들이 각자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열심히 경청하고 내가 품고 있던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중간중간 엉뚱하게 책 내용이 아닌 일상의 이야기로 흘러가기도 하는데, 책방지기는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본래대로 돌려놓기도 하고 슬쩍 문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녀는 토론이 항로를 이탈하지 않게 키를 잡고 멋지게 운항하는 말솜씨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의 독서 습관은 잡식성이다. 굳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기분에 따라 책을 골라 읽는 편이다. 나는 만화책으로 독서 습관을 익힌 사람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 오빠들이 빌려다 이불속에 감춰놓고 보던 만화책을 덩달아 몰래 읽게 된 것이 첫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지만 만화책을 별 지식 없는 가벼운 읽을거리라 생각했었는지 만화책은 억울하게도 제대로 된 책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오빠들도 엄마의 눈을 피해 사랑방 이불속에 만화책을 감춰 두고 한 권씩 꺼내 읽었을 것이다.

어린 내가 보고 읽은 만화책은 알쏭달쏭한 세상이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배울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변화무쌍한 흑백의 그림들과 내용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활자들을 보고 읽으며 나는 행복했었다. 그 알쏭달쏭한 세상에 빠져들어 남편과 연애 시절 영화관이나 커피숍 대신 만화방을 약속 장소로 즐겨 선택했었다. 약속 시간에 서로 조금 늦어도 탓할 일도 없거니와, 기다리느라 지루한 줄도 몰랐으니 일거양득이었다. 한때 소설가를 꿈꾸며 소설을 주로 읽게 되었지만, 여전히 만화영화도 즐겨 보며 딸아이와 만화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한다.

고백건대 나의 잡식성 독서 습관의 수준은 깊고 높지 않다. 굳이 정의하자면 종잇장처럼 얇고 평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점도 있는 편이다. 많은 이야깃거리로 상상하게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독서 습관은 토론할 때나 다른 이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흔히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독서 습관은 충분하게 내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작은 딸아이와 같은 나이의 `작가 김초엽'의 소설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자꾸만 멀리서 살고 있는 딸아이가 보고 싶어진다. 정말 빛의 속도로 우리 아이에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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