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올봄은 아니겠지
설마 올봄은 아니겠지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4.02.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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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4월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로 예비후보자들이 누비고 다니는 지상과는 사뭇 다르게 뒷산은 고요하다. 오늘따라 청명한 하늘에 더없이 빠져든다. 산에 오르니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이 몸을 푼다. 땅의 기운이 솟아 메마른 가지에 수유를 한다. 가지마다 힘찬 기운이 감돈다. 나는 지친 몸과 마음을 나무에 기대 모든 것이 안녕하기를 바라며 하늘을 본다.

뜬금없이 어디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가 불쑥 튀어 나온다.

하늘과 소통하던 상쾌한 기분을 뒤로하고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들어보니 리듬은 경쾌하나 내용은 황당무계하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가사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정치인들의 행보에 경악하고 욕을 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 이야기는 산까지 따라와 불편하게 한다. 비단 정치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사. 누가 누굴 나무란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왜 이 노래가 싫지 않지. 피해를 본 당사자가 아니라서일까? 너도 그런 일을 겪어도 되지만 “나는 절대로 안 된다”는 아이러니한 내로남불이다. 짐짓 들려오는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는다.

어디야/집이야 피곤해서 일찍 자려구/아 그래 잠깐 볼랬더니/오늘 피곤했나 보네 언능 자/ 어 끊어//근데! 니가!//니가 왜 거기서 나와/니가 왜 거기서 나와/사랑을 믿었었는데/발등을 찍혔네/그래 너 그래 너 야 너/니가 왜 거기서 나와.//피곤하다 하길래/잘자라 했는데/혹시나 아픈건가/걱정도 했는데//뭐하는데/여기서 뭐하는데/도대체//너네집은 연신내/난 지금 강남에/시끄런 클럽을/무심코 지나는데//이게 누구십니까//니가 왜 거기서 나와/니가 왜 거기서 나와/내 눈을 의심해보고/보고 또 보아도/딱봐도 너야/오마이 너야//니가 왜 거기서 나와/니가 왜 거기서 나와/사랑을 믿었었는데/발등을 찍혔네/그래 너 그래 너 야 너/이런건 사랑이 아냐.//노는 남자 싫다매/술은 못한다매/그것 땜에 나는 다/끊어버렸는데//지금 넌 왜/혀가 꼬이는 건데/도대체//근데 지금 니 옆에/이 남잔 누군데/교회 오빠하고/클럽은 왜 왔는데/너네 집 불교잖아.//니가 왜 거기서 나와/니가 왜 거기서 나와/내 눈을 의심해보고/보고 또 보아도/딱봐도 너야/오마이 너야//니가 왜 거기서 나와/니가 왜 거기서 나와/사랑을 믿었었는데/발등을 찍혔네/그래 너 그래 너 야너/이런건 사랑이 아냐/그래 너 그래 너 야너/니가 왜 거기서 나와///

변화무쌍한 자연을 경배하면서도 우리는 사리사욕에 젖어 세상을 불편하게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둘 이상이면 정치나 미스트롯 얘기가 오간다. 자연 앞에서라도 좀 초연해지면 안 될까? 자연은 우리에게 희망이란 봄을 선물한다. 감기로 콜록거리는 소리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두껍고 칙칙한 점퍼도 우리 곁에서 멀어지게 한다. 우리를 봄이란 선물로 마음을 다잡으라고 한다. 대지도 계절에 발맞춰 생명을 인간 세상에 내보낼 채비를 한다. 인간 세상을 동경하며 꿈꾸고 있을 생명 앞에 희망찬 우리의 봄은 언제 올까?

고요한 대지 위해 생명들의 향연이 머잖아 펼쳐진다. 이 벅찬 환희 앞에 우리는 두 손을 겸손히 모아야 한다. 내려오는 길에 산새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나 좀 알아줘, 나 여기 있어”하고 존재를 드러낸다. 가던 길을 멈추고 행인이 고개를 젖혀 나무를 올려다본다. 새는 숲이나 산에서 지저귀어야 노래가 되고 사람은 제 능력에 맞은 자리에 앉아야 편하다. 수준 미달인 사람이 정치하면 나라가 어지럽고, 모사꾼이 주위에 있으면 세상이 시끄럽다.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4월은 봄이다. 계절이 무색하지 않게 꽃피는 새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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