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물터널 명암수도(明岩隊道)와 명암지 준설
100년 전 물터널 명암수도(明岩隊道)와 명암지 준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4.02.22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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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엄경철 선임기자
엄경철 선임기자

 

명암저수지의 명암타워 구석진 곳에 조그마한 비석이 있다.

청주 우회도로에서 명암타워로 이어지는 도로 한쪽 구석에 세워진 비석에는 `명암수도(明岩隊道)'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화강암 재질의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자세히 살펴봐야 알아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진행된 풍화로 돌에 새겨진 글자가 마모된 탓이다. 이 비석은 100여년 세워진 수로준공 기념비이다.

그리고 명암타워가 바라보이는 명암지 주차장 팬스에는 `명암유원지 준설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호수 내에 쌓인 토사와 퇴적물 제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00여년 전 호수에 유입되는 토사와 퇴적물을 막기 위해 만든 수로준공 기념비와 준설공사 현수막이 과거와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명암수도(明岩隊道)'는 1927년 조선 최초의 모범수리사업으로 꼽힌다.

향토문화전자대전 등에 따르면 명암저수지(명암지)는 1918년 착공해 1921년 준공한 저수지이다.

축조된 지 100년이 넘는 수리시설이다.

방죽 밑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던 명암지는 토사유입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등 장마철이 면 호수에 토사가 쌓였다. 큰비로 인해 상당산의 토사가 밀려 내려와 호수에 쌓이면서 대규모 준설공사를 반복적으로 해야 했다.

이에 토사 유입을 막기위해 상류지역에서 명암지를 우회시켜 하류로 보내는 수로를 만드는 공사가 진행됐다. 700여m에 달하는 물터널 `명암수도'를 건설한 것이다.

1928년 준공된 `명암수도'는 명암지로 유입되던 토사를 막는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했다.

그런 `명암수도'가 제기능과 역할을 못하고 있다.

2003년 명암타워 조성과정에서 `명암수도'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명암지 하류지점의 일부 구간이 명암타워 공사로 인해 사라진 것이다.

훼손된 지점의 상류지역에는 견고한 콘크리트 재질의 수로 일부가 남아 있다.

하류구간의 훼손으로 토사와 퇴적물이 명암지로 그대로 유입돼 쌓이고 있다.

`명암수도'가 기능을 상실한 이후 청주시는 매년 1~2회에 걸쳐 명암지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

명암지는 토사와 퇴적물 유입 방지시설이 사라지면서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호우, 상류지역 개발 등으로 인해 토사, 퇴적물 유입이 심화되면서 준설작업 회수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명암지 토사와 퇴적물 유입 대책은 무대책이다. 유일한 방법은 준설 뿐이다. 준설에 따른 적잖은 예산과 행정력 낭비는 물론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0여년 전 만들어진 수리시설인 `명암수도'의 역할과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명암타워 건축과정에서 훼손된 `명암수도' 시설과 기능 복원에 대한 요구가 오랫동안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다. 지자체에서도 명암지 준설작업 외에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인 `명암수도' 복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명암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명암수도'가 복원돼야 한다.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대체수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명암수도' 부활은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근대수리시설물이자 지역의 문화유산인 명암지 보존을 위해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명암수도'에 대한 연구와 고증을 통한 복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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