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지구 끝까지
엄마랑 지구 끝까지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4.02.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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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2주 전에 KBS 1TV가 5부작으로 방영한 인간극장 `엄마랑 지구 끝까지'가 장안의 화제입니다.

요즘 세상에도 저런 효자가 있다니 하며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서입니다.

한국판 `엄마 찾아 삼만 리'라 불릴 만큼 안방극장을 감동의 도가니로 만든 대서사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엄마 찾아 삼만 리'는 이탈리아의 아동 문학가 에드몬도 데아미치스가 쓴 `아펜니노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를 의역한 동화제목입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사는 열한 살 마르코 소년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돈 벌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 엄마를 찾고자 밀항선을 타고 아르헨티나에 갔다가 곳곳에서 겪는 눈물겨운 이야기인데, 마르코가 천신만고 끝에 병든 엄마를 찾아 수술을 받게 하고 엄마와 함께 건강하게 가족이 기다리는 이탈리아로 귀국해 해피 엔딩이 되는 명작동화입니다.

`엄마랑 지구 끝까지'는 담도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엄마와, 그 엄마를 살리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1년 휴직하고 간병에 전념하는 효자 아들 강훈봉과 가족들이 펼치는 다큐드라마입니다.

엄마를 살릴 수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훈봉이의 지극한 효성이 하늘에 닿아 마르코 엄마처럼 훈봉이 엄마 병도 완치되고 훈봉이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는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찢어진 무릎연골을 치유하기 위해 용정숲공원 오솔길을 걷다가 강훈봉 모자를 만났는데, 사연이 갸륵하고 사회 귀감이 되어 충청타임즈에 `효자 강훈봉을 그리며(김기원의 목요편지 2023.11.2, 9면)'를 실었고, 그게 발원지가 되어 인간극장에 펼쳐지니 흐뭇하기 그지없습니다.

엄마! 인간이 태어나서 맨 처음 하는 말이자 맨 처음 부르는 이름입니다. 짧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열하고 가장 절실한 언어입니다.

언제 불러도 언제 들어도 싫지 않는 고맙고 그리운 이름이지요.

그래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사랑의 원천이며 희생의 대명사가 바로 엄마입니다.

그런 엄마지만 엄마도 생로병사 하는 사람이고, 아름답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픈 여자입니다. 이를 간과하고 사는 자식들은 엄마가 아파야 아니 엄마가 없어야 엄마의 고마움과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

나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웠던 엄마이기에 엄마가 아프면 의당 모든 걸 바쳐 쾌유시켜 드려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훈봉이 같은 효자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거개는 바빠서, 형편이 어려워서 살뜰히 보살피지 못하고 삽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위리안치 시켜놓고 가끔씩 들려다보는 게 요즘 세태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불효막심한 놈이었습니다.

아버님 병사로 50대 초에 과부가 된 엄마는 맞벌이 하는 장남 집에서 손자 둘을 돌보며 그럭저럭 사셨습니다.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혼자 텅 빈 집에 있게 되자 남편 부재에 대한 서러움과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로 인해 우울증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뇨와 녹내장 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살림살이 빠듯하고 살기 바빠 엄마를 케어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니 엄마를 살려야겠다는 마음보다 내 앞 가름이 앞섰습니다.

엄마랑 지구 끝까지는커녕 서울에 있는 변변한 병원조차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허무하게 보내놓고 술로 불효를 지우려했던 고약한 놈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저의 아픈 그늘이자 회한의 업보였습니다.

엄마 있는 친구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이유입니다.

돈 많은 친구, 권력 있는 친구, 힘 센 친구, 자식 잘 둔 친구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엄마 뵈러 간다는 친구, 엄마 모시고 온천 간다는 친구가 정말 부럽습니다.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 초로의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젖습니다. 자식들 사랑받으며 곱게 익어갔으면 하면서.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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