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의 교감
반려동물과의 교감
  • 강신욱 증평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
  • 승인 2024.02.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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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논객
강신욱 증평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
강신욱 증평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다. 겨울철 메마른 야산에 올랐다. 나뒹구는 낙엽은 윤기 없이 까슬까슬하다.

얼마 전 충북혁신도시가 있는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와 기전리 두 곳을 답사했다. 나지막한 야산이다.

이곳엔 진천의 두 역사적 인물이 영면해 있다. 진천 송씨 중시조 송인(?~1126) 선생과 정유재란 때 순국한 이영남(1563~1598) 장군이다.

송인 선생은 고려 중기 문신이다. 이자겸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의 반란군에 피살됐다. 난이 끝난 뒤 좌리공신에 추증되고 상산백(진천백)에 봉해졌다.

묘소는 직사각형의 호석(둘레돌)을 두른 고려시대 묘제의 특징을 보인다. 진천군이 조성한 두촌리 송인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영남 장군은 임진왜란에 이은 정유재란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 가리포첨사로 출전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장렬히 전사했다.

기전리 이영남 장군 묘소는 12지신상을 호석으로 둘렀다.

송인 선생 묘소와 이영남 장군 묘소는 각각 매산과 갈현산이 품었다.

진천 출신 두 문무관의 묘소엔 공통점이 있다. 묘 앞에 작은 무덤이 하나 더 있다. 또 그 앞엔 묘비가 세워져 있다.

송인 선생 묘 왼쪽 앞 무덤엔 `馬塚碑(마총비)', 이영남 장군 묘 오른쪽 앞 무덤엔 `龍馬塚(용마총)'이란 묘비명이 사각형의 오석에 음각돼 있다.

두 무덤의 주인공은 송인 선생과 이영남 장군의 애마다.

이영남 장군의 애마 무덤과 관련해선 노량해전에서 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한 장군의 시신을 보름 동안 고향으로 운구한 뒤 쓰러져 죽었다는 애마의 이야기가 전한다.

다른 전설엔 장군이 무과에 응시하러 갈 때의 일화다. 장군은 활을 쏴서 화살보다 늦게 달리면 말의 목을 치겠다고 했다. 활을 쏘고 말을 달려 표적에 다다르니 화살이 꽂혀 있었다. 장군은 약속대로 말의 목을 쳤다. 그때 화살이 말머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화살이 말보다 늦게 도착한 것이다. 장군은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일로 장군은 서두르면 패배의 원인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예전에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전장에선 장수와 운명을 함께했다. 주인이 잠든 곳 가까이 애마의 무덤을 만든 이유다.

좀 다른 각도이긴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애마일(愛馬日)이 있었다.

1939년 일제는 4월 7일을 애마일로 제정했다. 해마다 기원제와 위령제를 지내도록 했다. 앞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로선 산업상은 물론 군사상으로 말의 증산이 중요했던 것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는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넘는 552만 가구다.

청주시와 충주시 등 충북 내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려동물 놀이터 등을 잇달아 조성하고 있다. 증평군도 올해 보강천 둔치에 반려동물 놀이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개 식용을 금지하는 특별법도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송인 선생과 이영남 장군 묘역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도 동고동락했던 애마가 죽으면 자신의 무덤 곁에 묻었다. 후손은 선조가 아꼈던 애마의 무덤에 예를 갖춘다.

요즘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떠나보낼지, 반려동물 장례문화 인식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반려동물과 사람이 교감하는 반려문화가 점차 삶의 일부로 정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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