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국민도 꺾겠다는 의협
정부도 국민도 꺾겠다는 의협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2.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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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 14일 국회에서 의대정원 확대를 놓고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한 최세휴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은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했다. 의대가 아닌 공대 교수가 의대 정원증가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게 그가 반대한 이유였다. 그는 “20년 전에는 찬성했겠지만 지금은 반대할 수 밖에 없다”며 “그 때 학력고사 자연계열 수석들이 의예과,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등 다양한 전공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의대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등 산업 현장에서 첨단 기술을 개발해야 할 전문 인력을 의대가 독식하는 현상이 더 심해져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반대 논리이다.

실제로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이 굳어진 후 벌어진 현상들은 최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 삼성전자가 취업을 보장하는 이른바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올해 최초합격자의 92%(25명 중 23명)가 등록을 하지않았다. 역시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도 최초 합격자 10명 중 7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지난해보다 미등록 비율이 4배 가까이 높아졌다고 한다. 정원 증가로 문턱이 낮아질 의대에 도전하기 위해 보장된 대기업 취업을 미련없이 걷어 찬 경우가 태반이라는 추정이다.

수험생들 뿐만이 아니다. 의대 2000명 증원이 확정되면 이공계 재학생은 물론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 상당수가 이탈해 의대로 방향을 틀 것이고 국책기관과 기업체 연구원들까지 현업을 박차고 나와 의대 행에 가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의대가 조만간 산업 현장에 투입될 예비 연구 인력은 물론 기존의 산업체 인재까지 빨아들여 국가 경쟁력 하락을 재촉할 것이라는 얘기다.

자녀 의사 만들기에 올인하는 부모들의 반응도 민감하다. 최근 서울의 초·중학교 학부모들의 지방 전학 문의가 급증했다고 한다. 정원 확대를 지방대학 위주로 추진하고 지역 출신을 배려하는 전형을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이 전해진 후 벌어진 일이다. 기술로 승부를 내야 할 우리 미래 산업이 받을 타격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불현듯 지방 소멸위기에 대응할 묘책이 멀리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래 세대가 수능 성적 순으로 의대로 진학하는 의사 지상주의에 대한민국이 사로잡힌 이유는 무엇일까? 당사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의사가 이 나라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3년 전인 2021년 개업의사 연평균 소득이 3억4200만원에 달했다. 대형병원 의사 연봉도 2억원이 기본이다. 지방에는 3억원 이상 연봉에 두툼한 주말 수당, 집을 제공하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주요 과목을 휴진해야 하는 의료원이 수두룩 하다. 초고소득이 정년도 없이 평생 보장되니 견줄만한 대상은 대기업 임원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전문의를 취득하기만 하면 바로 상위 0.1% 신분으로 급상승하는 직군의 `밥그릇 지키기'에 수십년간 끌려다닌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6년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 10%를 줄인 것이 대표적 실책이다. 당시 정원 3507명을 3058명으로 줄이는 역주행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6000여명의 의사를 더 확보했을 터이고 의대 정원조정의 절박감도 덜했을 것이다. 이후 정부는 의대 증원을 추진할 때마다 번번이 무릎을 끓었고, 급기야 의료계에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방자한 구호가 철칙으로 자리잡게 됐다.

내일부터 각각 배수진을 친 정부와 의사들의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압도적 여론이 정부에 불퇴전을 주문하고 있다. 의사협회가 `이번 만큼은 의사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국민감정을 직시할 때야 해법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의사들은 말한다. 의사가 되기까지 무릎써야 할 10년의 고행(苦行)을 인정받고 보상받아야 한다고. 나는 그들이 그 험난한 여정을 인정받기 보다는 존중받는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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