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냉이
  • 전현주 수필가
  • 승인 2024.02.1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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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전현주 수필가
전현주 수필가

 

설을 앞두고 밭에 들렀다. 작년 늦가을 비닐하우스의 문을 닫은 후 첫 발걸음이었다. 하우스 안은 해가 비쳐 놀라우리만치 따뜻했다. 얇은 비닐 한 겹을 사이에 두고 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다. 빈 이랑에는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듯 남편과 가을감자를 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미처 주워 담기지 못한 자잘한 초록색 감자들은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다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낮에는 더울 지경이라고 해도 겨울밤의 추위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가을에도 밖은 서리가 내려 쌀쌀했지만, 하우스 안은 포근한 봄날 같았다. 여름에 비해 너무도 쾌적한 환경 덕분에 몇 날 며칠 흙바닥에 엎드려 감자를 캐면서도 힘이 든 줄 몰랐다. 신바람이 났다. 우리는 없어서 못 판다라는 말을 실감하며 20kg 감자 상자를 연일 차에 실어 날랐다.

몇 걸음 거닐며 하우스 안을 둘러보다가 냉이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어린 시절 평상에 누워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하늘에서 별을 찾을 때처럼, 하나를 찾자 주위의 냉이가 여기저기서 모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섣달이니 아무리 절기상 입춘이 가까웠다고 해도 꿈만 같았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허겁지겁 호미를 찾아 들었다.

냉이는 몸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있었다. 흔히 보던 것과는 달리 자줏빛이 도는 냉이를 캐는 순간 봄 내음이 확 끼쳐왔다. 그 향기가 너무 좋아 하나씩 캘 때마다 자꾸 손이 코로 갔다. 그러나 뿌리까지 온전히 캐기란 쉽지 않았다. 호미로 냉이 둘레를 먼저 파고 아무리 살살 뽑아도 `뚝' 소리를 내며 끊어지기 일쑤였다.

식물의 가느다란 뿌리가 끊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살아 보겠다고 애써 자라난 것을 내 욕심으로 해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다.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니 하우스 안에는 냉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꽃다지, 지칭개, 광대나물, 개망초, 까마중 등 무수한 풀들이 서로 어깨를 부대고 포복한 채 자라고 있었다.

그들은 운이 좋아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에 자리 잡았다고 한숨을 돌리고 있었을까. 그러나 풀들은 눈비가 쏟아져도 목마름을 달래며 하염없이 바깥을 바라만 보아야 했을 것이다. 겨우내 이제나저제나 비닐에 맺혀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물방울에 제 목숨을 맡긴 신세였을 것이다. 산 넘어 산. 더구나 머지않아 트랙터 날에 갈리고 괭이나 호미로 긁히거나 뒤집히고 또 멀칭 비닐에 파묻히는 신세는 노지 밭의 풀들과 마찬가지니, 누구에게나 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양이다.

햇살을 등지고 앉아 냉이를 다듬다 보니 서둘러 올린 짧은 꽃대에 흰 꽃송이가 조롱조롱 맺혔다. 왠지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냉이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분신을 남겨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희생이라는 말은 생각해 본 적도 없이 오직 자기가 머물던 자리에 씨앗을 남기고 떠나기 위해 그렇게 낮은 자세로 땅에 엎드렸던 것일까.

우리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것은 경이로운 자연에 감사하는 것. 맛있게 먹고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것, 적당히 거두고 남겨 다시 자라나게 하여 내년에도 잊지 않고 찾아 주는 것. 그리하여 아주 오랫동안 그들을 이 세상에 번성하게 하는 것….

냉이를 부드럽게 데쳐서 고추장과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갓 지은 밥에 함께 먹으니 저녁 내내 속이 편안하다.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았다. 캄캄한 눈앞에 오늘 만났던 냉이의 잔상이 보인다. 반짝반짝 별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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