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이 다 부럽다
별것이 다 부럽다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4.02.13 1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어릴 적 북적대던 설날이 잊히지 않는다.

큰집인 우리 집으로 사촌들이며 고모네까지 다 모이는 터라 북새통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너나없이 평상시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고 새 옷을 차려입고 골목이 터져나가라 놀던 어린 시절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새록새록 선명하게 떠오른다.

엄마는 그런 설날을 맞기 위해서 한 달여 전부터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때는 수돗물도 없고 가스 불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문명의 혜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는 시절이라 오직 여자인 엄마의 손끝에서 다 마련되어야 하는 설 준비였다.

낮에는 농사일이며 먹거리며 온갖 잡다한 일에 얽매이고, 밤이면 할아버지의 두루마기에서부터 솜 바지저고리와 식구들의 옷이며 어린 것들의 꼬까옷까지, 산더미 같은 준비가 모두 어머니의 손끝에서 이루어져야 했으니 어머니의 노동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늘에 실을 꿰기 위해 송곳니로 실 끝을 뾰족하게 끊어 내면서 엄마가 우스개로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다.

어떤 어른이 죽으면서

<저기 살림살이가 따라온다, 진절머리 나는 살림 좀 쫓아다오> 했다는….

옛사람들, 특히 우리 엄마들의 어렵고 힘든 살림살이에 억눌려 옴짝달싹 못 했던 시절의 설날 풍속도에 비하면 요즘 주부들은 그저 날로 먹는 것에 진배없는데….

설날이라고 부침개며 찜 갈비며 잡채 등등 안 하던 일을 오래 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몸이 쑤시고 저린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게 고작 아들딸 둘인데 그마저도 딸 아이는 여행 간다며 미리 다녀간 터라 오로지 큰아들 내외가 고명딸을 데리고 다녀갈 것이므로 올 설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준비하는 음식의 양도 그만큼 줄여야 하는데 양을 적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설이 지난 후에도 음식들이 줄지 않고 냉장고 가득 들어차 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빈자리의 적적함처럼 쌓인 음식들,

함께 이웃해 격의 없이 지내는 송 여사와 이 여사를 불렀다.

그들은 북적거리는 설을 지낸 터라 서로 인사치레를 하고선 뒷말이 많다.

“이거 봐, 막 태어난 아기가 반질반질 이렇게 이뻐야!”

“삼 칠일도 안 된 아기가 고개가 빳빳하다”는 둥 핸드폰의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여다보다가 내게 들이밀면서 자랑자랑이다.

증손녀 아기가 신기하고 자랑하는 할미들이 왜 이렇게 부러운가?

이 여사 송 여사 모두 비슷한 연배지만 나의 손자는 아직 대학생들인데 그들의 손자 손녀는 벌써 결혼도 하고 2세들까지 있다니….

아들 딸 넷을 낳고 미개인 소리까지 들은 내가 적적한 설날을 보낼 줄 누가 알았으리.

난 아직 증손녀는 없지만, 우리 예쁜 손녀 자랑이라도 해야겠다.

일류학교에 진학한 똑똑한 내 손녀, 책 벌레가 아니라는 듯 힙팝 춤을 기막히게 추는 내 손녀,

“얘, 지난번 보여준 지민이의 춤사위 녹화된 것 좀 보내다오.”

나는 부랴부랴 며느리에게 전화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