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 수 없는 것
그릴 수 없는 것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4.02.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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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도 그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그려 낼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려내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다. 시각으로 감지되지 않는 냄새나 마음 상태 같은 것들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그려 낼 수가 없다.

조선(朝鮮)의 시인 신위(申緯)는 과연 무엇을 화가도 그릴 수 없다고 본 것일까?


그릴 수 없는 것(題錦城女史藝香畵蘭)

畵人難畵恨(화인난화한) 사람을 그림에는 그 한을 그리기 어렵고
畵蘭難畵香(화난난화향) 난초를 그림에는 그 향기를 그리기 어렵네
畵香兼畵恨(화향겸화한) 향기를 그리고 겸해서 한도 그렸다면
應斷畵時腸(응단화시장) 그릴 때 응당 애간장도 끊겼으리라

당(唐)의 시인 중 왕유(王維)는 시와 그림에 모두 능하여 그림을 그리듯이 시를 쓰고, 시를 쓰듯이 그림을 그렸다는 후대의 평을 받기도 하였다. 시인도 시와 그림 모두에 능하여 종종 앞의 왕유(王維)와 비견되곤 한다.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린 경험이 많은 시인이었기에 그림을 그릴 때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는, 그 생김새를 그려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사람 내면,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한(恨)이다.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인 난()을 칠 때는 그 외양보다는 그 향기를 그려 내기가 훨씬 어렵다.

향기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향기도 그리고 한도 그리고 했다면,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일일 것이다.

그리는 이의 심혈을 다 기울여도 될까 말까 한 일이기 때문에 만약 그려냈다면 애를 무척 태웠을 것이고 그래서 필시 그 애가 잘라져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그림 그리기의 고충을 시인은 독백하고 있다.

모든 예술은 묘사의 영역이다. 시가 그렇고 그림이 그렇고 음악 또한 그러하다.

무엇을 묘사하는 데 유용한가에 따라 그 경계가 그어질 뿐이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사람의 내면을 절묘하게 묘사해 낸 예술 작품이 있다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큰 위안이 되리라.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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