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언제 죽어
아빠, 나 언제 죽어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4.02.07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우애가 두터운 오누이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여덟 살 난 아들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아들과 같은 혈액형의 피가 필요하게 되어 오빠와 똑같은 혈액형을 지닌 다섯 살 된 딸을 향해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너의 피를 줄 수 있겠니?” 아버지의 물음에 다섯 살 박이 여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술대로 올라갔다. 눈물을 흘리면서 팔을 걷어붙이곤 눈을 꼬옥 감고 이를 악문 딸을 보는 아버지는 딸에게 눈시울을 붉히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로 맺어진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과 딸 남매의 이야기를 보면서 시대 사회의 흘러오는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1960년대까지 기본이 넷에서 다섯 이상이었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때까지 낳아 많은 형제의 남매가 흔했다. 아들 혹은 딸만 태어난 가족이 아들만 주르르 낳았을 경우 딸이, 딸만 연이어 낳았을 때 아들을 갖고 싶어지는 마음이 간절하여 막내가 성별이 다른 남매가 꽤 많았다.

그로 인해 애틋한 가족애를 보이는 집이 있는 반면 서로 신경 쓰지 않는 데면데면한 가족도 있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애정은 있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끈끈해지는 형제 남매 사이이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는 오빠 누나가 동생을 키우는 경우 부모님 대신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도 했으며 생각이 비슷해서 어려서부터 취미 등 모든 면에서 사이좋게 즐기며 커가는 의좋은 가족들이 많이 있다.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 가족 형제 자매 하나하나라고 할 때 어느 아이 차별하지 않는 사랑정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일러주는 부모님이야말로 자식을 올바르게 가꾸고 길러주는 마음 아래 살아가는 가족이다.

그렇게 자란 형제 남매 또는 자매가 감정적으로 다툼의 소란이 자연스럽게 없어짐은 물론 관심이 비슷할 때 무슨 거창한 일을 할 중요성이 없을뿐더러 서로에게 싫어하는 모난 말투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정이 서려 있는 참 좋은 피붙이의 짙은 애정이 깃든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부모님 또한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이러한 아들 딸을 낳은 것으로 생각하여 이 모두가 소중하고 행복함을 보람으로 여길 것이다.

요즈음 부모님이 남긴 재산을 두고 서로 더 차지하고자 볼썽사나운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에 해당하는 이유가 자식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잡아주는 부모의 교육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다툰다는 것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 하지만 친구끼리도 서로 배려하고 도와 친형제 같은 사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한 뱃속에서 태어난 자신들이 사소한 일을 넘어 재산싸움으로 다투고 싸워 부딪치고 싶지도, 상대하고 싶지 않아 남남처럼 지낸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이라 할 것인가.

이렇다 보니 그런 사람들을 크게 못나 보이며 사람으로서 실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꽃다운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후 서로 독립하면 얼굴을 볼 기회가 적어진다. 각각 나름의 가정을 꾸려 살아가느라 사이가 점차 멀어지기도 하지만 늘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피와 살을 나눈 육친이라는 근본적 동질성을 잘 아는 사람들은 평생 확정된 관계가 불편해지면 가족관계의 큰 틀이 망가질까 봐 서로 못난 틈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