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신호
봄의 신호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4.02.07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봄이다. SNS 속에는 정원 친구들이 가득한데, 친구들의 SNS 사진과 이야기가 달라졌다.

겨우내 지난 봄, 여름, 가을의 정원을 추억하는 사진이나 겨울 소일거리로 목공 일, 음악 듣기, 빵 굽기 등을 올리던 친구들이 이제 자기 정원 마당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새로 심으려 사둔 꽃씨,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빈 땅 위에 삽이나 괭이를 던져둔 사진을 게시한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씨앗과 흙과 도구뿐인데 봄이구나 싶다.

봄이 오는 첫 신호는 이처럼 SNS를 타고 온다.

정원 가꾸는 사람에게 2월은 잔인한 달이다. 2월의 일기가 매우 불순하기 때문에 그렇다.

낮의 햇살은 부드럽고 따사로워 작은 나무들에 새순도 돋게 하고 꽃망울도 맺게 하지만 밤이면 겨울이나 다름없는 추운 바람과 기온으로 그 새순과 꽃망울을 말려 죽이기 십상이다.

한 작가는 2월을 `한 손으로는 어르고 부추기며 다른 손으로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고 평했다.

이리 변덕스러운 2월, 정원의 봄은 진짜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봄은 새싹 속에 담겨 온다. 붓 같기도 하고 솔 같기도 한 앙증맞은 크로커스 새순을 발견했을 때 아, 봄이구나 한다.

아무것도 살아있는 것은 없을 것 같았던 마른 풀들 사이로 작은 초록 새순이 돋을 때 그 신비란 뭐라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새순 속에 노란빛, 흰빛, 보랏빛의 앙증맞은 꽃봉오리를 맺을 때는 어떤가? 그건 진짜 봄이다. 땅에 봄이 왔다는 진짜 첫 신호는 새싹 속에 있다.

아직 바람이 찬 2월에 새순을 내는 이 강건한 식물들은 대체 어떤 특성을 지닌 것일까? 이 식물의 대부분은 알뿌리 식물들이다. 알뿌리 식물은 뿌리 또는 줄기, 잎이 변형되어 영양분을 보관하는 공간(둥근 부분, 알, bulb)을 지닌 식물을 이르는 말이다. 이 식물의 지하부를 꺼내보면 양파나 고구마 같은 형태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꽃이 진 후 지상부는 없어져도 지하의 뿌리가 살아남아 다음해에 다시 꽃이 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봄의 전령사 같은 이 알뿌리 식물들은 이미 지난 가을 심어둔 것이다. 첫 서리가 내리기 전 심어서 충분히 뿌리내린 건강한 이 알뿌리들은 추운 겨울을 견딘 후 드디어 봄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운다.

튤립, 수선화처럼 봄에 꽃이 피는 알뿌리 식물들은 추운 겨울을 보내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는다.

자연에 순응하는 식물들의 유전자 속에는 겨울을 겪어야 따뜻한 봄이 온다는 진리가 깊이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삶도 다를 바 없다. 작년에 뿌려 둔 우리 노력과 정성이 올해 때를 만나 그저 꽃피우는 것이다. 그러니 올 봄 우리의 삶은 작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이미 정해졌다. 아쉬울 것도 자만할 것도 없다. 작년의 삶을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올 봄에 꽃씨를 뿌려야 여름과 가을에 꽃을 본다는 것이다.

이 봄도 그냥 지나가면 여름과 가을 무엇으로 삶을 꽃피울 것인가? 자연은 뿌린 만큼 거두게 한다. 아주 늦었다보다 하고 늦게 뿌린 씨앗은 늦은 가을에 꽃피워 기쁨을 준다. 늦으면 늦은 대로 뿌린 만큼 기쁨을 나누어 준다.

여전히 2월은 변화무쌍한 날씨로 정원 가꾸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올해처럼 4년에 한 번 덤으로 주어지는 하루가 왜 못된 2월 달에 가서 붙느냐고 하소연이 나올만하게 말이다.

아름다운 5월에 하루 더해서 5월이 32일이 되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다 생각하니 끔찍하기도 하다. 그 바쁜 5월이 하루 더 있다니 말이다. 2월이 29일이 된 것이 다행 아닌가? 봄을 준비할 정말 덤 같은 시간이 되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