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있기 위한
버릴 수 있기 위한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4.02.0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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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검은 물이 흐르는 곳? 어떻게 도랑에 검은 물이 흐를 수 있지? 그런 곳의 풍광은 어떨까? 철없던 시절의 나에게 탄광촌은 상상 속의 장소였기에 에둘러서라도 들러서 가 봤던 곳, 그렇게 호기심을 채워보고자 했던 곳이었다. 그 후에도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들만이 나의 시선을 잡았다. 멀쩡한데 고급지기까지 한 버려진 차들이 수두룩 빽빽하다더라, 다른 지역에서는 사라져가는 전당포가 그곳에는 한 집 걸러 한 집씩 있다더라, 카지노 직원들의 급여 수준이 부정 입사까지 방불케 할 정도라더라는 등의 이야깃거리는 그놈의 호기심만을 발동하게 했다. 타지인의 시선으로 보면 정선은 그런 곳이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측은 그런 곳, 그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소녀 송희의 시선으로 그려낸 단편소설 `무겁고 높은'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평을 보면 `단편소설 한 편에 담기 힘든 여러 소재를 끌어들였음에도… '라 했을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산업화에 따라 생기는 음지와 양지, 음지가 양지로 발달 되길 바란 대안이 또 다른 음지와 양지를 만드는 이중적 작태들, 그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내야만 하는 이들, 위너의 배경 역할을 견뎌야 하는 루저들의 이야기 등 아픈 이야기들이 많다.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난 타인의 결정에 휩쓸려 가야 하는 우리들,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으로 봤다. 작가는 송희의 이야기를 한켠에 두고 거창하지도 먼 미래를 내다보며 한 것도 아닌 송희의 선택, 그 선택을 통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오롯이 본인의 의지로 선택 했을 때 주는 명쾌함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무겁고 높은'이라는 제목만으로는 소설의 내용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단어들의 조합이라 그러하고, 꾸며줘야 할 단어 없이 형용사만 덩그러니 있어 더 그렇다. 그러나 `바벨을 쥘 때는 … '이란 첫 구절만 읽어내도 뭘 말하는지 감 잡을 수 있는 제목이다. 그렇다, 역도 소녀의 이야기다. 송희의 입을 빌려 작가가 일러주는 대로 글을 읽다 보면, 내용과 기막히게 똑 떨어지게 맞는 제목임을 알 수 있다. 역도 경기를 통해 성장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은 작가의 혜안을 따라가 보자.

역도는 `위로 솟는 운동이며 앉아서 시작하고 일어나야 끝나는 운동'이란다. 또한 이기고 지는 게 없는 운동, 즉 들어 올린 무게만큼의 성공이 있을 뿐이고, 들어 올리지 못한 만큼의 실패만 있는 운동이란다. 이 말은 누가 더 무거운 것을 높이 들어 올리고 그것을 정해진 시간만큼 버티고 있느냐가 역도의 성공을 뜻하는 것일테니, 제목의 `무겁고 높은'은 역도의 궁극적 목적이지 싶다.

송희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역도에 내려놓는 동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들었다면 그것으로 경기는 끝이기 때문에 바벨을 그대로 바닥에 버린다.'라고 말한다. 바벨을 들었다는 것은 목표한 바를 이뤘다는 것이고, 성공했기에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버린다는 것에는 의지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벨을 나의 의지로 내려놓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떨어뜨리게 되는 현상도 있다는 것! `떨어뜨린다'는 것은 바벨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니 송희는 그걸 염두에 두기 싫었다. 그러기 위해, 바벨을 떨어뜨리지 않고 내 던지기 위해, 송희는 성공하고 싶었다.

역도는 목표를 이루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보상이 따른다. 바벨을 버릴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 송희는 그 쾌감을 즐기기 위해 냅다 버려 보기 위해 송희는 바벨을 수없이 든다. 송희는 버리기 위해 든다.

송희는 선택지가 별로 많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엄마의 부재, 바깥으로 더 많은 발을 딛고 있는 아버지, 여유롭지 못한 경제 상황 등은 송희에게 자기결정권에 대한 욕구를 증폭시킨다. `버리려면 들어야 했다. 버리는 것과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달랐다.' 송희는 자신이 정한 마지막 경기에서, 버릴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바벨을 들었으나 결국 떨어뜨리고 만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그만두는 것은 떠밀려 결정하게 되는 것이기에 송희는 중단하지 않고 들어 올린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위해, 앞에 놓인 새로운 시간을 위해 쇳덩이를 쥐고 두 발로 바닥을 밀어낸다. 고군분투하며 스스로 결정 해 내는 송희는 앞에 놓인 삶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나아가려 한다. 그 길 끝에 이기고 지는 것, 성공과 실패 어느 것이 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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