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나라
우울한 나라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4.01.3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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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동물만 정글에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 세상은 정글보다 더 치열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오르고자 발버둥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하루하루를 버틴다. 때로는 번아웃조차 삶의 과정이라며 착각한다. 무엇을 향해 우리는 달려가 는 것일까?

`신경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맨슨이 최근 유튜브에 게재한`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화제다. 144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마크맨슨이 한국을 여행한 이유는 21세기 최고의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낸 한국이 최악의 정신 건강 위기를 겪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24분짜리 영상은 공개한 지 8일 만에 74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영상은 경복궁 흥례문앞에서 “사회가 당신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영상에서 그는 한국은 불과 수십년만에 과학, 기술, 스포츠, TV 및 영화 등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불안, 우울증, 알코올 중독의 비율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높고 세계를 자살로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크맨슨과 인터뷰를 한 심리학자 이서현씨는 “한국사회는 모두 경쟁이 심해서 완벽주의자가 많고 100점을 맞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며 “5~6살때부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맨슨은 한국의 경제적 기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고 정부는 잔인한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청소년들은 꿈꿀 시간이 없다. 학벌과 학력, 가정적 배경으로 계층 사다리가 형성되다보니 학생들의 목표는 오로지 간판 좋은 대학 진학이 된 지 오래다.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마치면 학생들은 운동장이 아닌 학원으로 향해 또다시 책을 펼친다. 학원에서 끝나면 집으로 갈까? 당연히 스터디카페로 향한다. 새벽까지 이어진 공부로 비몽사몽 아침을 맞는다. 명절도, 생일도, 가족 행사에서 학생들은 늘 제외다. 성공의 열쇠가 성적으로 좌우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오로지 공부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무슨 꿈을 꾸어야 할까?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전국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영·유아 사교육비 실태조사'를 보면 학부모 65.6%는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사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학 전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킨 주된 이유로는 소질 계발 목적 외에 선행학습(41.4%), 불안심리(23.5%)로 조사됐다.

교육부가 지난해 초 1·4, 중1, 고1 등 4개 학년 173만159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심리 검사 결과를 보면 2만2838명이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상담·치료가 필요한 `관심군 학생'도 8만2614명에 이른다. 초등학교 입학전부터 선행학습을 해야 하는 어린이들에게 행복한 유년 시절이 남아 있기는 어렵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2023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 조사 결과'를 보면 하루 일과를 시간으로 살펴본 아동행복지수에서 수면시간은 2021년 8시간14분이었지만 지난해엔 7시간51분으로 줄었다. 반면 공부시간은 2시간27분에서 3시간 11분으로 증가했다. 충동적 자살 생각은 4.4%에서 10.2%로, 우울·불안은 1.24점에서 1.3점으로 늘었고 자아 존중감은 3.11점에서 3.06점으로 줄었다. 행복지수가 `하'인 비율은 87%인 반면 `상'인 비율은 13%에 그쳤다.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 1위는 학업성적, 시험이었다.

총선이 70여일 남은 요즘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승리를 향해 공약을 남발한다. 하지만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정책은 실종됐다. 아이들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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