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줄 생일 선물
나에게 줄 생일 선물
  •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 승인 2024.01.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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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갓생,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의 `생(生)'이 합쳐져 만들어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신조어란다.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뜻하는 말. 삶을 바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 당연함이 쉽지는 않다. 그런데 갓생을 산다는 것이 존엄을 지켜가기 위한 당연한 실천이라기 보다는, 어렵고 힘든 삶을 버텨내고 극복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의무적인 실천처럼 느껴져서, 갓생을 살아가려는 모습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깝게 느껴졌다.

얼마 전, 큰 아들의 생일이 있었다. 여태껏 한번도 아들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자신의 생일날 자신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아카이브에 자신의 논문 초고를 올리고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란다. 아카이브에 자신의 논문이 등재되는 날짜를 생일날로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 하였다. 컴퓨터를 전공한 아들이 배정 알고리즘에 몰두한지 2년만의 일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겠다는 아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안함 또한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 그의 관심 분야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창업을 한다면 메타버스나 게임, 블록체인, AI, 빅데이터와 같은 내가 알고 있던 전도유망한 분야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정작 들어본 적도 없는 매칭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적이 실망스러웠다. 컴퓨터에서 프로그램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기 위한 분야라기에, “그거 고입배정에도 적용 가능하니?” 하고 물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교직에 몸 담고 있어서 생각나는 것이 그것 뿐이었고, 또 당사자인 아들도 원하지 않았던 고등학교로 임의배정되어 입학 초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을 없앨 수만 있다면 그나마 가치 있겠다 싶어 무심코 그렇게 입방정을 떤 것이 씨가 되어 시작된 일이다.

가능할 것 같다고 판단한 아들은 근 2년을 거기에 매달렸다. 말이 창업이었지, 수입 한 푼 없이 오로지 알고리즘 개발에 몰두한 연구의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양태는 다를지 모르겠으나 아들에게는 이 시간들이 아들 방식의 갓생으로 산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차원의 알고리즘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논문을 썼고, 그의 생일날 아카이브에 그 논문의 초고를 등재하였던 것이다.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신념 하나로, 풀릴지 안 풀릴지 모르는 어려운 숙제를 붙들고 시름하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치열하게 갓생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안되었을 그 시간들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을 곁에서 지켜 보면서 마음이 짠 하였다.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이 알고리즘을 학교배정에 적용하면 배정의 질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다 하니 기쁘다. 충북대 교수님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충주 지역 배정 연구에서 고무적인 배정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니 더욱 기대도 된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나도 내 생일날, 여태까지 한 번도 내게 줘 본 적이 없는 선물을 이제는 나에게 해 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나에게도 생일이 찾아온다. 내 생일날, 나는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내 생일날, 나에게 멋진 곡을 하나 선물할 수 있도록 나도 지금부터 갓생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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