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갯머리 송사
베갯머리 송사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4.01.3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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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사각사각,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며 어머니는 밥 한 공기를 남김없이 잡수신다. 쿵더덕 쿵덕 쿵덕쿵, 깍두기 씹는 소리가 마치 신명 나는 장구 가락 같다.

“아이고 큰일 났다. 내 틀니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도 통 보이질 않는다.”

낮에 들른 경로당에 가보겠다며 어머님의 목소리에 차례 음식을 만들던 나와 형님은 손을 멈추고 현관으로 갔다. 하얗게 질린 어머니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며 신을 신는다. 가만 보니 한발은 슬리퍼를, 다른 발엔 운동화를 꿰고 계셨다.

아주버님은 경로당으로,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틀니를 찾기 시작했다. 어머니 방에 가니 옷장과 서랍에 곱게 있었을 옷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딱 어머니 낯빛 같다. 아무리 뒤져 봐도 틀니는 하늘로 솟은 건지 나오지 않았고 차례 준비는 중단됐다.

“어머니, 좀 전까지도 끼고 계셨어요. 전 드셨잖아요.”

좀 전에 맛있게 전 드시던 생각이 났다. 다시 이 잡듯 뒤졌지만, 틀니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 이불을 뒤적였다. 손에 걸리는 건 없다. 혹 시나 하는 마음에 탈탈 털었다. 툭, 하고 떨어지는 틀니.

“찾았다! 찾았어요.”

마치 산삼이라도 찾은 것처럼 소리 질렀다.

치아 부실로 음식을 못 드시게 된 어머님은 여든 중반에 틀니를 하게 되었다. 틀니가 나오기까지 7개월, 이후 적응하기까지 다시 두어 달이 더 걸렸다. 그 기간에 잘 드시지 못해 화내는 일이 잦아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가치를 받고 이젠 먹나 싶었는데 생각과 달리 씹을 수가 없었다. 그 모든 불편함에 대한 원망의 화살은 아들이 아닌 큰며느리에게 꽂혔다.

“내가 화가 나서 느그 성한테 욕을 해부렀다.”

조부자 집의 귀한 딸로 태어난 어머니는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렇게 철없는 어른이 된 어머니는 주변을 살피기보다 당신이 우선인 분이었다. 그런 분이 틀니를 했으니 익숙해지기까지 사연이 오죽 많았을까. 그 과정이 힘들어 당신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오고 만 것이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머니 방에서 자게 된 날이었다. 자기 전 어머니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느그 성이 말이야”로 입을 떼셨다. 나는 지금이 바로 내가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친구분 중에 교회 다니는데 제사상 꼬박 챙기고 직장 다니면서 살림하는 그런 며느리 있어요?”

이 말을 시작으로 어머니 친지분들은 며느리나 딸의 살림을 대신해 주시지 않느냐, 모시는 자식이 없어 혼자 사시는 분도 있지 않느냐, 어머니는 당신만 챙기면 되니 얼마나 행복하냐 등등의 말로 어르고 달랬다.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틀니에 적응한 어머니는 예전보다 많이 누그러지셨다. 기회다 싶어 이제 형님께 사과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가 미안하긴 했다. 그때는 부아가 나서 내가 미쳤능갑다.”

어머니도 내심 마음이 편치 않았던가 보다. 이왕이면 형님 손 꼭 붙잡고 하시라는 말을 덧붙였다.

형님 내외가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됐다. 주말이 되자 우리 부부는 서둘러 문을 닫고 어머님과 인근 백숙집으로 향했다. 죽을 맛나게 드시던 어머니가 남편이 화장실에 간 틈에 말씀하셨다.

“느그 성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를 부둥켜안았다. 잘하셨다고, 정말 잘하셨다고 했다. 어머니 성정에 사과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더구나 손까지 꼭 잡고 진심으로 사과하셨다니 그보다 기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나의 베갯머리 송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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