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주는 풍요 `무'
계절이 주는 풍요 `무'
  • 이연 꽃차소물리에
  • 승인 2024.01.3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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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이연 꽃차소물리에
이연 꽃차소물리에

 

제법 매서운 날씨에 온몸이 움츠러들고 감기가 기승이다. 나 역시도 엊그제 몸살감기로 병원을 찾았더니 평소와 다르게 병원이 감기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이런 날씨에는 감기에도 효과적인 따끈한 무말랭이 차가 제격이다. 유리 다관에서 노랗게 우러난 차를 따라 마시며 눈발이 날리고 있는 밖의 풍경을 살핀다. 여러 번 덖었는데도 `무' 특유의 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제법 구수하고 달큼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무, 하면 떠오르는 추억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감할 것이다.

학교 오가는 길 남의 밭에서 무 한두 번쯤은 쓱 뽑아서 먹어보지 않았을까. 싱그런 푸른 잎 아래로 뽀얗게 올라오는 새하얀 무를 풀잎에 대충 문질러 입으로 껍질을 벗겨 가며 먹는 그 달짝지근하고 아삭아삭한 시원함이란 경험해본 사람은 알리라. 그 맛이 지금의 어떠한 과자보다도 맛이 있었다는 것을. 나도 그랬었다.

어디 그것뿐이랴. 긴긴 겨울 이웃 어른들이 마실을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에게 “입이 심심한데 무수 구덩이에서 무수 좀 꺼내와 봐유” 하신다.

엄마는 무수 구덩이에 덮여 있는 짚을 걷어내고 구멍에 손을 쓱 밀어 넣어 무를 몇 개 꺼내 오셨다. 그러고는 칼로 껍질을 벗겨 길게 쭉쭉 삐져 놓으셨다.

하나씩 입에 물고 꼭 누군가는 한마디 하셨다. “방구들 꾸지 말어. 무수 먹고 방구 안 꾸면 인삼 먹은 거보다 좋다니께” 그 말이 얼마나 웃기던지 무수 먹고 방귀를 안 뀌면 그 귀한 인삼 먹은 거만큼 좋을까. 의심하며 정말 방귀를 참아보려 했었다.

지금도 깍두기나 동치미를 담글 때면 그 말이 생각나 무를 베어 물며 피식 웃곤 한다.

무가 지닌 많은 성분을 알기 전까지는 내 의구심은 여전했었다. 그 흔한 무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들이 생활의 지혜란걸 예전에는 몰랐다.

실제로 무는 비타민C 함량이 높고 섬유소가 많아 채소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겨울철 비타민 공급원이 되었다.

또 칼로리는 적고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소화효소인 디아스타제가 많아 육류를 즐겨 먹는 사람들과 저열량 다이어트 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먹으면 좋을듯하다.

어디 이것뿐이랴. 무를 말리면 생무일 때보다 비타민C는 5배, 칼슘은 22배, 철분 함량도 48배 높아진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생무일 때도 최고의 채소이지만 무를 말리면 그 안에 있던 각종 영양소가 몇 배에서 수십 배로 늘어나니 겨울철 이보다 저렴하고 좋은 채소가 있을까 싶다.

나도 꽃차를 배우기 전까지는 `무'를 차로 만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무는 꽃으로 차를 덖는 것보다 수월하고 누구나 쉽게 차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먼저 무를 생채나물 할 때보다 조금만 더 두툼하게 썰어 햇빛에 적당하게 꾸들꾸들 말린다.

그리고 기름기 없는 팬에 덖음과 식힘을 여러 번 반복해서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볶아내기만 하면 끝이다.

만약 차를 우릴 때 무의 특유의 향이 거슬린다면 `레몬머틀'잎 서너 잎 함께 넣어 우리면 한결 더 맛이 향기롭고 깊어진다.

무의 꽃말은 “계절이 주는 풍요”라고 한다. 이보다 더 적당하게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얼마 전, 잎부터 뿌리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제주 월동 무를 생산지에서 수확도 하지 못하고 갈아엎었다는 기사를 보며 안타까웠다.

이럴 때 월동 무 몇 개 사다 꾸들꾸들 말려 차로 덖어 두면 요즘같이 으슬으슬 날에 우려 마시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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