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가봉태실의 세계유산 등재를 꿈꾸며
조선왕실 가봉태실의 세계유산 등재를 꿈꾸며
  •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24.01.2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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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조선 왕실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태(胎)를 항아리에 담고, 기운이 좋은 땅을 골라 그곳에 태실을 조성하고 태항아리를 안장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태의 주인과 후손들에게 길지(吉地)가 가진 좋은 기운이 전해진다고 믿었다. 즉 출산의 신성히 여겼던 생명 존중 사상과 땅의 기운을 중시했던 풍수지리 사상이 결합하여 조선만의 독특한 장태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조선 왕실 태실이 가진 가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받아왔다. 전국에 산포하는 103개 조선왕실 태실 중에 국가지정 문화재가 4건, 시도지정이 18건, 향토유적이 2건에 달한다. 또한 작년 10월에는 조선 왕실 가봉태실이 가진 가치를 재조명하고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국제학술대회를 충북, 충남, 경기, 경북 4개 지자체가 힘을 합쳐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선 왕실 태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와중에,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국립청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 세종 태실의 중앙 태석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뉴스였다. 지금껏 어느 승탑의 부재로만 추정되던 유물이 알고 보니 무려 반세기 전 사라졌던 세종 대왕 태실의 부재였던 것이다. 세종 태실은 본래 경남 곤양 소곡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그 원형을 잃어버리고 경기도 양주로 이전 당했다. 광복 이후 우여곡절 끝에 사천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이미 원위치에는 민묘가 들어선 상태여서 원형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결국 산 아래 일부 석물들과 비석을 모아둔 상태로 정비되었다. 더욱이 태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 태석은 1960년대 이후 사라졌었는데, 이번 발견을 통해 세종 태실의 핵심 유물이 확인된 것이다.



세종은 태실 조성의 의례와 규범을 정비하여 조선 왕실 태실 체계를 확립한 군주였다. 그로 인해 조선은 고려와 차별화되는 태실의 체계를 갖추었으며, 왕과 태자만 태실을 조성하던 고려의 전통에서 벗어나 왕위를 잇지 않는 모든 아들과 왕비까지 태실을 조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태실 조성에 진심이었던 세종 본인의 태실은 원 위치도, 핵심 유물도 사라진 상태였는데 이번 발견을 통해 원형을 찾아갈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 놀라운 발견은 오랫동안 한국 태실을 연구해 온 심현용 한국태실연구소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세종 태실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1967년 신라오악학술조사단이 현장에 흩어진 석물들을 수습해 촬영한 흑백 사진 한 장이 유일했다. 그 흐릿한 사진으로만 기억되던 한 문화유산이 한 학자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태실 중 본래의 모습을 잃은 것은 세종 태실만이 아니다. 1928~34년에 걸쳐 전국의 54기 태실이 일제에 의해 본래의 자리를 잃고 경기도 고양 서삼릉으로 이전되었고, 남은 석물은 방치된 채 훼손되었다. 광복 이후 각 지역마다 태실 정비가 이루어졌으나 세종 태실의 사례처럼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한 경우도 상당수이다. 청주 영조 태실 역시 원 위치에 민묘가 들어서면서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고, 결국 현재의 위치인 낭성면 무성리 산6-1에 복원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충북의 또 다른 2개의 태실, 충주 경종태실과 보은 순조태실은 원 위치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세계유산으로서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나의 유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잊혀져버린 가치를 되찾기 위한 학자들의 연구과 이를 잘 보존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 그리고 이들의 가치를 잊지 않고 지켜내고자 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한데 모아졌을 때 비로소 하나의 유산이 온전히 빛을 발하게 된다.



작년 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조선 왕실 가봉태실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또한 올해에도 충북, 충남, 경북이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연구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국비를 확보하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제 시작이다. 조선왕실 가봉태실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세계유산이 탄생하는 그날까지 모든 이들의 마음이 한데 모아지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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