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멘토가 할 일
대통령의 멘토가 할 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1.28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통하는 신평 변호사는 “일종의 궁정 쿠데타”라고 말했다. 한 방송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을 두고 벌인 갈등 과정을 놓고 한 촌평이다. `궁정 쿠데타'는 왕조 체제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발언 당사자가 “같은 권력 기반 안에서 어떤 한 권력자를 다른 권력자가 교체한다”는 의미로 두 권력간의 충돌을 궁정 쿠데타에 비유했다고 했으니 시대착오적 표현으로 몰아가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서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 기반, 열성적인 활동가들이 한 위원장 측으로 대부분 옮겨간 것 같다”고도 분석했다.

한 위원장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으로 미뤄 신 변호사는 이 `궁정 쿠데타'를 지지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지기반 대부분이 한 위원장 쪽으로 이동한 것 같다'는 분석에선 이 쿠데타가 상당 부분 성공했음을 인정하는 듯 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2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신 변호사의 상황 분석과 일치한다. 신 변호사가 궁정 쿠데타로 비유한 윤·한 갈등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잔인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율이 52%로 솟은 반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31%로 추락했다. 그동안 대통령에게 굳게 닫혔던 중도의 민심이 한 위원장 앞에서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고 봐야한다. 한 위원장에 대한 과반의 우호적 민심은 `명품백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해명해야 한다'는 60%가 넘는 여론을 받든 결과물이다. 여전히 대통령실 수족으로 기능하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한 위원장의 상승세를 공유하지 못하고 답보를 거듭하는 현상이 그 반증이다.

신 변호사는 `궁정 쿠데타'의 불경과 불충을 탓하느라 쿠데타에 동조한 52%의 민심을 애써 경시한 것 같다. 왕조시대라면 한 위원장은 왕명을 거부한 역도가 되고, 그를 지지한 민심은 역도와 한패가 됐을 터이다. 지금은 `궁정'이나 `쿠데타'라는 말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민주주의 시대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도 `국민이 무조건 옳다'는 지론을 수차 밝히지 않았던가?

신 변호사의 다른 인터뷰 발언들도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는 유승민 전 의원을 언급하며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항해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려 할 때 한 위원장 이상의 지지를 받았으나 장기적으로 단명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제2의 유승민이 될 수도 있다는 한 위원장에 대한 충고 같기도 하고 대통령에게 기어오르지 말라는 으름장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반역죄를 물어 유승민을 내친 박 전 대통령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도 한 위원장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윤 대통령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 것이냐. 아직은 이 소동이 진정되지는 않았다”는 말도 했다. 갈등 구조를 봉합하기 보다는 진행형으로 끌고가려는 의중이 읽혀진다. 정권의 명줄이 걸린 총선보다 내전에서의 승리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냉철한 조언으로 대통령의 눈을 밝힐 지혜로운 멘토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조만간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할 것이라고 한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한 위원장과의 갈등 등 우여곡절 끝에 내린 때늦은 결정이다. 마지못해 나선 대리 사과라는 폄훼를 피하기 어렵게 된 게 현실이다. 진정성을 인정받고 여론의 공감을 얻으려면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파격이 이뤄져야 한다.

신 변호사가 할 일은 일어나지도 않은 쿠데타 진압이 아니라 대통령이 하지않느니만 못한 해명을 하지않도록 아픈 조언을 하는 것이다. 정권 심판론으로 흐르는 총선 패배는 누구보다 그의 멘티인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