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
여자야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4.01.2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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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아니 평범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아이들이 일찍 잠에 들었고 우리 부부에게 간만에 자유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야식을 기다리는데, 남편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슬쩍 말을 걸었다. 요새 내가 빠져 있는 미국 수사드라마가 있는데 거기 출연하는 팀장 캐릭터가 너무 멋있다는 말로 시작해 어떻게 멋있는지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호들갑을 떨며 말을 이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이 남모를 압박감을 느꼈는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때마침 야식이 도착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맛있는 냄새에 몸까지 들썩거리며 포장을 뜯고, 텔레비전을 켜서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보려는데 남편이 물었다.

“여자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내가 아까 좋다고 난리를 떨었던 팀장이 여자냐고 묻는 것이었다. “어, 여자야.”라고 대답하고 한참 드라마를 보는 데 마음 한편이 괜스레 찜찜했다. 그래, 말 그대로 석연치 않았다.

살다 보면 우리가 꽤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머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수사팀장이라고 하니 당연히 남자일 거로 생각한 남편처럼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어떤 한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은 마치 글에 나오는 작가 모습이 진짜 그 작가인 것처럼 여기기도 하고, 업무적으로 나와 안 맞는 부분이 있는 어떤 사람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아마 모든 면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할 거야, 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를 흔히 볼 수 있음에도 막상 내가 병원에 갔는데 남자 간호사를 만나면 여전히 어색하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여자 선생님이 아닌 남자 선생님을 보면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의 경우, 보이는 글을 오래도록 썼다 보니 글 속에 비치는 모습만 내 모습인 양 비치기도 하고, 혹은 칼럼뿐만 아니라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을 잘 쓸 것 같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제로 써야 하는 글의 특성상 한 주제를 놓고 쓰다 보면 평소 내가 흐릿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남들에게는 조금 더 명료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그저 나는 나의 글을 쓰는 데 익숙할 뿐 어떤 특정 상황에 필요한 글을 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선입견을 기반으로 키워온 기대감을 나에게 펼쳤을 때 내가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결과를 내지 못하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나의 한계를 충분히 인정함과 동시에 상대방에 왜 그런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에 마음속에 오래도록 담아두지 않지만, 혈기가 왕성했던 시절에는 참 상처도 많이 받았다.

타인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한순간이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 기적은 있어도 마법은 없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상대를 찌르는 무기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듯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편파적인 사고로 인해 누군가는 좌절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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