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타임캡슐, 조선왕조 의궤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타임캡슐, 조선왕조 의궤
  • 노지영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연구개발팀 전문관
  • 승인 2024.01.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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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노지영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연구개발팀 전문관
노지영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연구개발팀 전문관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나 일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이를 SNS에 게시하여 공유하거나 자료로 보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중요한 행사와 기억할 만한 사건들을 기록했을까?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 의궤'가 존재했다. 의궤는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의 왕실 의례에 관한 기록물로 왕실의 중요한 의식, 제사, 혼례, 장례, 연회, 사신 영접, 문화 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실록과 달리 국왕 개인보다 그 시대 전반의 생동감 있는 묘사가 특징인 의궤는 역대 국왕과 왕세자의 즉위·죽음·장례·묘지 등 행적, 중앙과 지방 행정제도 및 관제 변천사, 왕실 행사와 제례, 천재지변과 재앙 등을 과정과 날짜에 따라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대와 주제별로 분류·구성된 의궤는 왕실의 의식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여주며, 동시대 동아시아의 다른 문화와 자세하게 비교할 수 있게 한다. 특히 `반차도(班次圖)'와 `도설(圖說)'과 같은 그림 자료는 그 시대의 제식과 의식을 오늘날의 영상, 사진 등의 시각 자료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후대 실록 편찬 시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3895여권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의궤는 그 종류도 다양한데, 대표적으로는 왕실의 결혼식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 왕의 장례식을 기록한 국장도감의궤, 궁궐 건축과 수리를 기록한 영건도감의궤 등이 있다.

각 의궤는 행사의 전 과정을 글과 그림을 이용하여 기록만 보아도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게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가례도감의궤'는 결혼식 행렬, 가례 본식의 모습을 반차도로 스냅샷처럼 기록하고 있어서 왕실에서는 가례 행사를 준비할 때 이 기록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였는데 현시대에 웨딩플래닝 가이드 북과 같이 활용된 셈이다.

사용된 물건과 동물,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까지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의궤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바로 임금이나 왕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실 행사기록에 임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시 임금은 절대적인 위치에 있어 의궤에 그림 기록을 남기는 일반 도화서들은 감히 임금의 존엄한 얼굴을 그릴 수 없었고 왕의 어진은 당대 최고의 화원들에 의해 그려지고 선원전이라는 곳에 보관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반차도에는 임금 대신 임금이 타고 있던 가마의 모습만 묘사하고 있다.

의궤는 선조들의 철저한 기록 관리 문화를 보여준다. 의궤는 행사가 끝난 후 바로 작성되었으며 작성된 의궤는 왕에게 직접 보고된 후 궁궐 내의 왕실 문서보관소, 춘추관과 의정부, 사고(史庫) 등에 보관되었다. 안전한 문서고에 보관된 의궤는 훼손과 분실 방지를 위하여 정기적으로 점검되었고 의궤 책은 습기와 해충에 강한 기름종이와 비단으로 제작되었으며 나무상자 속에 보관됨으로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되었다. 체계적인 보존 방법과 철저한 노력 덕분에 조선왕조 의궤는 오늘날까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유교적 전통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서 독창성을 가지며 인쇄물로서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의궤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기록으로 그 당시 행사 및 의식을 재현할 수 있게 하며 동아시아 문화권의 유교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의궤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 포털을 통해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타임캡슐, 의궤를 통해 조선왕조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시대 삶의 흔적을 통해 민족의 아름다운 문화를 엿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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