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나무 이야기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4.01.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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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이 이방 땅에서도 일종의 루틴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처음 시작은 강아지 때문이었다. 환경이 달라지자 강아지는 집 밖 나서는 것을 무서워했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로 산책하면 좀 익숙해지려나 하고 하루 두 번 아침, 저녁 왕복 4~5킬로미터 같은 코스를 함께 뛰거나 걸었다. 집에서 공원까지 약 2킬로미터 남짓인데, 집에서부터 1킬로미터 정도는 대로 곁에 붙은 인도이고, 초등학교를 지난 다음부터는 나무 터널이다. 나무 터널의 양쪽엔 작은 공원과 동물원이 있다. 동물원은 담장이 둘러 있지만, 오후엔 담장 사이로 얼룩말이며 기린도 볼 수 있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강아지는 정말 다행히 산책을 꽤 즐기게 되었다. 특히 나무 터널을 좋아하는데, 나무 터널 옆 동물원에서 나는 냄새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야생동물처럼 자유롭게 사는 이곳의 닭들을 쫓는 재미가 좋은 것인지 하여튼 나무 터널 아래를 걸을 땐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나무 터널의 수종은 `Samanea saman', 여기서는 멍키 포드(monkey pod, 원숭이 꼬투리)라고 하는데 광범위한 분포 지역처럼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사만(saman), 잉가 사만(inga saman), 동인도 호두(East Indian walnut), 찬키리 나무(Chankiri tree)라고도 한다. 싱가포르에 갔을 때도 식물원이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나뭇잎이 물방울 모양이라 거기에서는 비 나무, 레인 트리라고 불렀다. 꽃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자귀나무의 분홍 깃털 모양 꽃과 비슷한데 그래서 이 나무를 사만 자귀나무라고도 한다.

수형은 완만한 이등변삼각형 모양인데, 어떤 이는 왕관을 닮았다고도 한다. 아름드리 굳건한 수간은 탄탄하고 해양성 기후에서 자라는 전형적인 형태의 가지는 넓고 낮게 펼치며 너른 그늘을 선사한다. 그늘이 넓으니 나무 터널 아래는 왕복 2차로의 자동차 도로와 자전거 루트를 겸한 꽤 넓은 인도가 조성되어 있다. 나무 터널 아래에서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도 멋지지만 제멋대로 뻗어 구불구불한 가지도 참 멋지다. 나무 터널에는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가 다치지 않도록 통행하는 자동차의 높이도 제한한다.

소나무가 흔해도 정이품송 나무처럼 특별한 나무가 있듯이 가로수로 흔한 사만 자귀나무 중에도 특별한 나무가 있다. 일본의 한 기업명을 별명으로 가진 특별한 사만 자귀나무, 멍키 포드 나무가 한 식물원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기업 대표가 거대하게 울창한 나무를 보고 영감을 얻어 기업의 광고를 만들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실제 식물원에서 자라는 그 나무를 보면 울창하게 뻗은 가지들이 자연스럽게 얽히며 얼마나 아름다운 모양을 내는지 현재도 그 나무는 일본 사람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라고 한다.

그 특별한 나무 아래 서 있으니 장자의 이야기 한 편이 떠올랐다. “남백자기라는 사람이 상구(商丘)에 놀러 갔다가 거대한 나무를 보았는데, 얼마나 나무가 대단한지 수레 1,000대를 나무 그늘 아래 묶어놓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자기가 `이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이 나무는 분명 재목으로 가치가 있을거야.'라고 말하면서 가지를 올려다보니, 꾸불꾸불 꼬부라져 기둥으로도 들보로도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래로 큰 둥치를 보니 나뭇결이 꼬여서 널감으로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잎을 핥으면 입이 부르터 상처를 입고, 냄새를 맡으면 취해서 3일간 깨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멍키 포드의 구불구불한 가지가 상구에 있었다는 그 나무 비슷하겠구나 싶었다. 세상의 쓸모와 거리가 멀었던 덕분에 저 자라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자라 천수를 누리는 나무 말이다.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진 것 같을 때 저 나무를 떠올리리라. 살아있는 모든 것의 쓸모는 자연이 정하는 이치,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의미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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