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뒷모습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24.01.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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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씨앗 한 톨

 

그는 대장봉에 올라서서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 63개 섬을 발아래 둔 채,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흰구름으로 드문드문 가려진 하늘은 푸른 바다의 빛깔을 조금 더 짙게 만들고 있었다. 한눈에 선유도(仙遊島)까지 바라보고 있을 테니, 신선놀음이라 해도 무방할 듯했다. 내가 본 것은 그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뿐이었다.

얼마 전에 받은 사진에도 내 뒷모습이 고스란히 담겼었다. 10대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었다. 객석 아이들의 표정이 또렷하게 잡히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가 읽혔다. 노래를 무사히 끝낼 수는 있을까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내 뒷모습에서 가장 눈에 띈 건 희끗희끗하게 센 머리털이었다. 만감이 서렸다.

언제부턴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얼굴이 빛나는 사람도 되면 좋겠지만, 뒷모습이 쓸쓸해선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다정하게 팔짱을 낀 노부부의 뒷모습, 산책하면서 홀로 생각에 잠긴 뒷모습,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도시의 거리를 걷는 뒷모습, 붉게 타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뒷모습,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응시하는 뒷모습, 밀담을 나누는 듯한 사람들의 뒷모습, 어디론가 내달리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 발걸음이 천근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만근 무거워 보이는 뒷모습, 칭얼대는 어린 자식을 등에 업고 가는 엄마의 뒷모습, 누군가의 뒷모습을 찍는 사진작가의 뒷모습.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뒷모습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뒷모습의 전경(前景)이 주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나도 모르게 찍힌 뒷모습이 부르는 무언가(無言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 뒷모습을 직시하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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